해성 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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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 노씨
해성 노씨를 상징하는 문양 (1898년 제정)
해성 노씨를 상징하는 문양 (1898년 제정)
한자 海盛 盧氏
영어 Noh (Haesung)
본성(本姓) 기원전 1세기 경 등장 추정
표어 이 가문의 모든 빛들이여, 혜성처럼 날아 해성의 별이 되어라.
가조(家祖) 노파특 (盧波特)
종별(種別) 정치, 연예, 군사, 문학 등
출신지 해성행정시
근거지 해성행정시
출신 저명인물 노무현 (현 당주)
노태현 (현 부당주)
지류·분가 서울 해성노씨 (해성계 한국 동포)
동경 해성노씨 (해성계 일본 동포)
뉴욕 해성노씨 (해성계 미국 동포)

해성 노씨 (海盛 盧氏)해성국의 성씨이자 명문가이다. 해성국 내에서 약 98,500명이 이 성씨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1세기 경 해성왕조의 등장을 도운 것으로 추정되며, 그 공로로 해성의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명문가 역할을 해왔으며 약 1,000여년간 혈통이 이어진 해성국 최고 수준의 명문가이다. 해영국 시기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으며, 해영국을 지탱하는 가문 중 하나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부자들이 직접 돈을 출자하여 해외에 자금을 대거나 젊은이들은 직접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해방되자 해성왕조의 귀국을 도왔으며, 내전에서 해성왕조의 편에 섰다. 1951년 쿠데타로 공화국이 설립된 이후 가문의 수많은 이들이 숙청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 독재 타파 운동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며 저항하였다. 이후 1978년 신군부 세력과 함께 왕정복고를 감행하여 해성왕조를 다시 왕으로 모셨으며, 그 공으로 현재도 진씨와 함께 해성의 명문가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다.

표어인 "이 가문의 모든 빛들이여, 혜성처럼 날아 해성의 별이 되어라."는 해성국판 이순신이라 불리는 노시영이 직접 붓으로 쓴 글귀이며, 가보급으로 보관되다가 1900년 당시 당주였던 노신수에 의해 공식적으로 표어로 지정되었다. 붓으로 써진 표어는 현재 해성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해성 노씨 종친회에서 엄중히 관리하고 있다.

해성 노씨는 해성국에서 명문가이고 수가 많기에 외국에서도 그 혈통이 많은데, 이들은 조국과 가문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현지에서도 해성 노씨성을 그대로 보존하며 사용하고 있다. 예로, 대한민국에서는 해성계 한국인 중 해성 노씨인 사람들이 서울 해성노씨를 창성하여 혈통을 잇고 있으며 그 수는 약 2,000여명에 이른다. 그 외에도 일본, 미국 등지에서도 동포들이 해성 노씨를 보존하고 사용하며 혈통을 잇고 있다.

공로

  • 기원전 1세기 경, 노파특해성왕조의 등장을 도와 노(盧)씨 성을 하사받았다.
  • 해영국 당시 번영을 위해 수많은 해성 노씨 출신 인물들이 국가에 충성하였다.
  • 일제 강점기 당시 해성 노씨는 공식적으로 독립운동을 도와 자금줄을 대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 해방 이후 해성왕조의 귀국을 지원하였다. 이후 내전에서 해성왕조를 위해 의용군을 창설하여 참가하였다.
  • 독재시기 당시 해성 노씨는 공식적으로 독재 타파 운동을 전개하였다.
  • 해성국의 왕정복고를 도왔다.

관습

오랜 세월동안 내려져 온 관습이 존재하며 이것은 아주 엄중히 지켜지고 있다.

해성 노씨는 특이하게 남초인 가문이였다. 그래서 남성이 오랜 세월 주도권을 잡으며 남존여비적인 풍이 강하였으나 근대부터 점차 여성 위인들이 나타났고 현재도 여성 주요 인물들이 나오면서, 해성 노씨도 개방적인 풍으로 변모하는 중이여서 점차 남존여비는 허물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1980년대부터 태어나는 가문의 아이들의 성비도 맞춰지기 시작해 남초도 이젠 옛말이 되어 갈 듯 하다.

운영

해성 노씨의 운영은 3개의 단체로 나뉘어져 있다.

종친회(種親會)

종친회는 해성 노씨의 정부격인 단체로, 원로 및 종친회원들이 모여 족보 발행 뿐만 아니라 회계 관리, 소속원 구성 및 관리, 가문 명예 관리, 가문 방향 설계, 로비 및 자금줄 대기 등의 잡다한 일을 한다, 한마디로 해성 노씨를 이끌어 가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언나루(言那屢)

언나루는 해성 노씨의 의회격인 단체로, 관례에 따라 당주가 언나루의 의장을 맡는다. 매달 정기적으로 1번 열리며 해성 노씨의 일족이라면 학생이나 군인 등의 신분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거대한 대강당에서 열리며, 참석인원이 아주 많아 현대시대에는 인원을 분산하여 통신을 통해 중계하며 개최하고 있다. 해성 노씨의 일족이라면 누구나 여기서 의견이나 반론, 토론 등을 전개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불이익은 전혀 없다. 그러나 발언의 수위는 본인이 알아서 조절해야 한다. 언나루는 해성 노씨의 일족들이 앞으로 가문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처단행(處斷杏)

처단행은 해성 노씨의 법원격인 단체로, 옛날 가문을 욕보인 자를 살구나무 아래에서 심판했다고 하여 처단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에는 살인, 모욕, 범죄, 방탕 등으로 가문을 욕보인 자들을 엄중하게 처단하여 살인까지 하는 사례가 있었으나 현재는 당연히 순화되어 범죄자 등을 가문에서 제명하거나 사회 봉사를 하도록 하는 수준의 처벌을 내린다. 그러나 처단행에 한번이라도 심판을 받는 자의 신분으로 가면 가문 내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들으며 처벌 경력이 있는 경우 가문에서 사람 대우를 안해주며 해성 노씨의 영향력때문에 해성국 내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가문에서 제명받으면 그냥 해성국 내에서의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

주요 인물

  • 2013년에 만든 족보에서 종친회 지정 해성 노씨 10대 위인으로 표시된 인물은 볼드체 표시

과거

  • 노파특 (가조, 기원전 1세기 경의 인물로 추정, ? ~ ?)
  • 노현자 (해영국의 전설적인 충신으로 전해지는 인물, ? ~ 908?)
  • 노시영 (해영국의 충신이자 장군, 1364 ~ 1429)
  • 노신수 (기업가 및 독립운동가, 1872 ~ 1942)
  • 노해진 (독립운동가, 1904 ~ 1948)
  • 노극기 (독립운동가, 1899 ~ 1938)
  • 노가 (독립운동가, 1905 ~ 1934)
  • 노명일 (독립운동가 및 군인 및 정치인, 1891 ~ 1965)
  • 노맹박 (독립운동가 및 정치인, 1911 ~ 2000)
  • 노하성 (정치인, 1925 ~ 1997)
  • 노건용 (독립운동가 및 대기업 CEO, 1907 ~ 1988)
  • 노희우 (기업인, 1924 ~ 2010)
  • 노주의 (유력 정치인 및 전직 부총리, 1932 ~ 2009)
  • 노윤태 (유력 정치인, 1937 ~)[1]

현재

  • 노무현 (당주, 국회의원, 1946 ~)
  • 노태현 (부당주, 국회의원, 1947 ~)
  • 노한미 (외교관 및 전직 외무대신, 1943 ~ )
  • 노태일 (유명 연예인, 1993 ~)
  • 노진서 (사회운동가, 1991 ~)
  • 노서희 (유명 연예인, 1994 ~)
  • 노홍철 (유명 연예인, 1979 ~)
  • 노태우 (대기업 CEO, 1949 ~)[2]
  • 노은석 (방송국 사장, 1960 ~)
  • 노빈손 (유명 소설가, 1975 ~)
  • 노경은 (유명 야구선수, 1984 ~)
  • 노진구 (현직 장성이자 전직 사격수, 1953 ~)
  • 노우진 (현직 장성, 1956 ~)
  1. 현재 암투병중
  2. 노건용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