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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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海盛國
영어: Kingdom of Libancourt
해성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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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표어 繁荣与和平
번영과 평화
국가 화평번영가
해성국 지도.png
본토인 해성제도만 명시.
수도 해성행정시(海盛行政市)
정치
공용어 해성어(海盛語)
일본어(日本語)
한국어(韓國語)
국민어 한국어(韓國語)
지역어 해성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정, 다당제 민주주의
매금왕(寐錦王) 전화량
국무대신(國務大臣)
부국무대신(部國務大臣)
총법원장(總法院長)
김예실
이세연
정화은
역사
정부수립  
 •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 1945년
 • 해영국 정부 수립 1945년
 • 공화 쿠데타 1951년
 • 왕정복고 1978년
지리
면적 13864.345㎢ (160위)
내수면 비율 2.5%
시간대 UTC (UTC+9)
인구
2016년 어림 10,296,840명
2016년 조사 10,295,213명 (80위)
인구 밀도 734명/㎢ (2016년)
경제
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4,010억$
 • 일인당 38,943$
HDI 0.891 2016년 조사)
통화 해성 화
기타
도메인 .lc
국제 전화 +83
해성국의 세계관
통일 세계관 외전 세계관 모니타림 세계관

해성왕국(중국어: 海盛王國, 일본어: 海盛王国, かいせいおうこく 가이세이오코쿠[*][1], 영어: Libancourt 리반쿠르[*]), 약칭 해성국 (海盛國, 일본어: 海盛国, かいせいこく 가이세이코쿠[*])은 한반도 동부 해상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해성제도를 영토로 하고 있으며,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를 1945년 해방 이후 관리하고 있다. 해성국은 기원전 성립된 해영국(海瑛國)의 법통을 계승하여 1945년,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절대 군주정을 유지한 왕국 체제가 유지되었으나 1951년, 공화 쿠데타로 왕정이 전복된 뒤 해성 공화국이 되었다가, 1978년에 왕정복고 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정을 표방한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후 해성국의 왕실은 대도 연방제국의 성립 이후, 선거 군주제적 요소를 통해 2015년의 연방 제황(聯邦 帝皇)으로 선출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 왕실의 수장인 전화량은 해성국의 군주인 동시에 연방의 수장직을 겸임하고 있는 형태이다.

북쪽으로는 루스카 연방이화민주주의공화국, 동쪽으로는 일본, 남쪽으로는 적광인민공화국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수도는 해성행정시(海盛行政市)이며, 국기는 해동성기, 국가는 화평번영가, 공용어는 한국어이다. 사용 문자는 한글이다.

국호

해성국(海盛國)이란 국호는 과거 해영국의 별칭으로서 유래되었다. 해성(海盛)은 종교적, 정치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왕실에서 자국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1951년에 공화 쿠데타 정권이 해성 공화국(海盛 共和國)을 국호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민간에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고, 왕정복고 혁명 이후에도 위 명칭을 공식 국호에 별칭 용어로 채택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대외적 공식 국호는 해성왕국(海盛王國)임을 과시하고 있으며, 한자 문화권에서는 대체로 해국(海國)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 불리는 국호인 리반쿠르(Libancourt)의 시초는 1900년대 초기에 미국 국무부와 영국의 왕립지리학회가 해당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영어권 전역에 전해지게 되었다. 이후 1945년에 정식 알파벳 국호로 굳혀지게 되었다.

역사

해성국의 역사
海盛國史
Flag of Libancourt.jpg
v  d  e  h

이 항목의 정확한 내용은 해성국/역사 항목으로 이설될 것이다.

고대 시기

해성제도는 대한민국의 울릉도와 함께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 사이에 해저로부터 솟아난 해산(海山)이며, 섬 부분은 산의 봉우리 부근이다. 섬 중앙에는 해성봉(海盛峯)이 있다. 이와 더불어 현서구, 예동구에서 고인돌과 무문토기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면서,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를 거쳐 넘어온 여러 인종의 유입과 상호작용을 통해 기초적인 문명이 발전하였고, 이러한 문명을 원성 문명(原成 問名)이라고 명명한다. 원성 문명 시기에는 농사가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빈부격차와 계급제도가 형성되면서 각 부족들을 통한 원시 혈족 국가가 성립되었는데, 이러한 시기는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해영국의 건국과 중세 시기

난립하던 부족들을 통일한 전칠(全漆)은 한반도의 여러 소국들과 교류하여 선진 문물을 수용하였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국호를 해영(海瑛)으로 명명하였고, 군주의 명칭을 사로국에서 따온 매금(寐錦)으로 하여 왕권을 강화하면서, 중앙집권체제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6세기에 신라와 조공 관계를 확립하였으나, 독자적인 주권국가의 형태를 유지하였고, 이러한 조공 관계는 고려시기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고려는 고려의 사람들을 이주시키면서 해성제도를 합병시키려고 했으나, 대외적인 문제와 해영국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1407년에는 쓰시마 도주가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헌납하고 포로를 송환하면서, 쓰시마 도주 휘하의 영토로 들어올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절하였고, 이에 쓰시마 도주의 강력한 군사적 압박을 받았으나, 조선과 일본 사이에 유연한 외교 정책을 통해서 이를 무마하였다.

임진왜란 시기까지 왜구의 노략질을 많이 당했으나, 무신 군황(武信)시기에 독립적인 수군 편제의 확립과 함께 적극적인 토벌 정책을 펼치면서, 왜구들의 활동을 감시하였다.

1780년대에는 프랑스의 라페루즈 탐험대가 해성제도를 실측하여 리반쿠레(Libanqulet)라는 명칭으로 지도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근대 시기와 일제 강점기

근대시기의 해영국은 신치 군황(信熾)시기에 선교사들이 방문하면서, 개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신종은 일본과 조선과 달리, 개화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의사를 표하였고, 직접 개화정책을 적극 펼쳐냈으나, 서양 열강들은 해영국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서 이들의 지원과 지지를 잃게되었고, 결국 개화는 유야무야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00년에는 해성제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지금의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 어비스군도는 에베레스트 산과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를 아득히 초월하는 수직 터널 구조를 띄는 심연 동굴을 보여주면서, 많은 탐험가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어비스군도는 1904년, 일본이 해성국을 합병하면서 함께 병합되었으나, 해성국의 해방과 함께 해성국 영토로 귀속되었다.

이후, 일본이 1904년, 8월에 러시아의 동향을 관찰하기 위한 전진기지를 이유로 매금왕 일가를 전왕가(全王家)로 격하시키고는, 해영국을 식민지화하였다. 이에 많은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은 본토에서의 활동이 어려움을 감안하여 러시아로 대거 이주해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자유시참변 시기에 함께 피해를 입으면서 독립운동 세력은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 세력은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그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구미 지역과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한반도와 함께 카이로 선언을 통한 국제적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는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및 항복과 함께 해방되었고, 전왕가 일가는 일본 본토에서 귀국하여 절대 왕정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해영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화주의자를 비롯하여 사회주의자, 반왕실주의자들은 왕가의 절대 왕정 체제에 반대 의사를 선언하면서 일종의 내전상태를 거치게 되었다.

해방과 현대

미국과 소련은 해성 제도를 중립 지역으로 인식하면서, 해성국은 제3세계의 일원으로 자동 편입되었다. 그러나, 해영국은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주의자를 기반으로 한 세력과 정부-왕실간의 갈등이 격화되었고, 결국 1951년에 공화 쿠데타 세력이 수도와 왕궁을 점거하면서 해성 공화국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해성 공화국의 독재 정치에 신음을 앓던 국민들과 신군부 세력들은 1978년, 공화국 정부를 전복하고 왕실복고를 선언하면서 지금의 해성 왕국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신군부 세력은 이후, 자체적인 군사강령을 발표하여 정치에 대한 간섭을 일체히 금할 것을 선언하면서 국민들의 귀감이 되었고, 왕실은 과거 절대 왕정 체제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표하면서, 국민들의 동정과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해성 왕국은 현재 의원내각제를 적용한 입헌군주국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정치와 행정 및 외교

해당 내용의 본문은 해성국/정치입니다.

해성국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선언과 함께 해영국 임시건국준비위원회와 해영국 왕실복귀위원회의 수립과 함께 주권 독립을 위한 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하였고, 왕실의 귀국과 함께 왕실을 중심으로 한 절대 왕정 체제가 성립되었다. 당시의 복고된 매금왕인 전율(全栗)은 점진적 입헌군주체제 확립과 경제 개발 정책을 발표하였으나, 공화주의자를 기반으로 한 반왕실 세력들은 '즉각 공화제 선언'과 '왕권 포기 선언'을 요구하면서 독자적인 사병을 소유하여 왕실과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1년에 공화 쿠데타세력이 왕실과 정부를 전복하고 해성 공화국의 건립을 선포하면서, 공화체제가 들어섰다.

당시의 해성 공화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을 이유로 대통령제를 정치체제로 채택했으나, 대통령을 해성국가평의회를 통한 간선제를 통해 선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성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일당 독재체제를 시도하였다. 또한, 정부에 대한 반발이나 불만을 철저히 억누르고 무력으로 압박하였고, 이에 분노한 시민과 신군부 세력은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의원내각제를 기조로 한 입헌군주국인 해성 왕국이 건립되었다.

해성국의 정치 체제는 군주인 매금왕(寐錦王)과 헌법이 양립하는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행 해성국 헌법에서 매금왕은 "해성국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해성 국민들의 동의에 입각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헌법이 정하는 국사(國事)에 관한 행위만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매금왕은 외교의례 및 헌법 상으로 국가 원수로서의 대우 및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입법 기관인 평의회(評議會)는 헌법에서 명시된 국권의 최고 기관이자 유일 입법 기관으로서, 영국식 의원 내각제를 채용하여 수상의 지명권, 내각 신임과 불신임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평의회는 단원제로 평의원들로 구성되며, 평의원들은 전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이다.

행정권은 의결대신을 장으로 하는 내각에 속하며, 내각은 행정권의 행사와 아울러 평의회에 책임을 진다. 내각은 의결대신과 이하 의결대신이 임명권을 가지는 국무대신들로 조직되어 행정권의 사무와 함께 법률 집행, 외교 관계에 대한 처리, 조약 체결, 예산 작성 등을 비롯한 하위 입법 업무를 수행하고 이러한 수행 상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각 국무대신들을 책임자로 하는 행정부서(성,省)을 갖추고 있다.

해성국의 사법 기관으로는 총법원(總法源)이 있다. 총법원과 하위법원으로 구성되며, 모든 재판관은 자신의 양심과 독립된 직권을 행사함에 따라 헌법과 이하 법률의 구속을 받는다. 총법원의 법관은 내각의 지명을 받아 매금왕이 임명한다.

해한관계

한국과는 긴밀한 외교 파트너로서, 경제적·문화적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제국령 시기에는 양국의 독립 운동가들이 협력하였으며, 현재도 의례적으로 양국이 공동 주관하는 "해한 독립운동대회"를 운영 및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역사 프로젝트를 함께 계획하여 나아가고 있다. 다만, 울릉도 귀속 문제 및 독도에 관한 입장에서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해 한국 대사관은 해성행정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한 해국 대사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다.

해일관계

일본과는 한국 다음으로 가는 외교 파트너로서, 동북아시아에서 몇 안되는 일본의 우호국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함으로서 빠른 속도로 양국의 협력 관계는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역사 문제에서는 크게 잡음이 없으나, 독도에 관한 문제에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해중관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한국과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크게 불협화음이 이어나는 경우는 없다. 양국의 국민들도 자주 체류하거나 관광하는 등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러관계

모노예프스크 군도 문제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으며, 루스크섬 분리 운동에 대해서도 갈등을 빚고 있다. 다만, 사할린 및 연해주 개발을 통한 극동 개발에 파트너로서 경제적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해첨관계

첨관 공화국과는 크게 접점이 없으나, 공화국 시기에 노관식오리쿠치 마키의 일담이 영화화 되면서 양국의 외교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동아시아 협력국으로서 힘을 합하고 있다.

국방

이 부분의 본문은 해성국/국방입니다.

신형 육군 전투병을 착용한 국군의 모습.

해성국 이전

해성국은 중세부터 왜구의 노략질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수군 편제를 개편하면서,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근대 시기에는 특위군(特衛軍)을 창설하여 근대적 군사 체제를 갖추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1904년에 일본에 합병으로 인하여 강제 해체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가 출신들이 해영국 국군에서 활동하였으나, 이 당시에는 공화 쿠데타세력의 사병 집단에게서 수도와 왕궁을 방어하지 못할 만큼 이름뿐인 집단이었다.

해성국 이후

해성 공화국 시기에는 국군 현대화 및 안보 강화정책을 통하여 국군이 위치하는 자리가 본격궤도에 올라가게 되자, 부패하고 독재 정치에 반발하던 신군부세력을 중심으로 무혈 군사혁명을 통한 왕정복고가 발생하면서, 공화국군은 일시적으로 해체되었다가 해성국 신정부 성립뒤에 해성 왕립군으로 새로이 개편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해성 국군은 엄격한 병무행정을 통해 운용되고 있으며, GDP에서 차지하는 국방비의 비중은 약 3%이다. 싱가포르, 이스라엘과 같은 소수정예 군대의 대표격.

국토와 국력이 작기 때문에, 이웃나라인 일본과 러시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인지, 국민개병제를 통해서 일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국적자 및 영주권자들은 18세가 되면 민족과 인종을 불문하고 군대에 징집되며, 이를 연기시킬 수도 없다. 다만, 어비스군도에서 활동하는 국가 탐험가를 비롯한 일부 특수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특수 병종으로 분류하여 따로 징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해성국의 현역 전투병들은 지원제이며, 대부분의 징병된 이들은 민방위대에 배치되어 출퇴근 근무를 한다. 합숙은 훈련소에서만 이루어지며,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체육특기자들의 경우에는 훈련기간을 단축하는 특혜가 있다. 제대한 이후에도 40세까지 매년 40일간 소집되는 예비군 기간을 거친다.

해성국의 전시 전략은 방어전이 아닌 적국 본토에 대한 역습을, 즉 엘리전을 주력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장거리 지상 공격 능력이 가능한 전투 공격기를 도입하고 상륙함과 다수의 상륙정을 보유하고 있는 추세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주해성미군이 상시 대기중에 있으며, 지역 강국인 일본과 대한민국과 긴밀한 군사협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안보 리스크를 줄이면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였다.

넉넉한 군비덕에 해성 국군은 질적으로 우수한 형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협소한 국토로 인해 미국 공군기지를 임대하는 식으로 공군의 비행훈련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중국·러시아 포위망에도 은근슬쩍 끼워주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

규모가 작아서 통제가 쉬운 나라라는 이점 덕에 경제적으로 대단히 잘 나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한반도, 일본 열도, 러시아를 잇는 해상 물류항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어 자유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독립 직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경제 개발 정책과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대성공을 이루면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였다. 명목상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8,943$에 달하며 구매력도 아시아권에서 손꼽히기에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고 할 수있다.

해성 공화국의 독재 정권부터 시작된 시민 경제력에 대한 이해력이 충만하여, 실업률 5%대 미만을 유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성과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고용률 기준으로도 75%에 달하는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며, 단편적인 경제부분만 보더라도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복지를 비롯한 전반적인 요소에서 끊임없이 신경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공기업이 세금을 요구하는 악질이 되기 십상인 타국과는 달리, 국영 투자회사인 정부 투자회사(Government of Libancourt Inverstment Corporation)은 해성항공 같은 일류 기업의 대주주 노릇을 하고 있으며, 덧붙여 주택의 80%가 정부 주택개발청에서 공급하고 있다.

주택의 대부분을 국가에서 공급한다는 부분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볼 수있으나, 협소한 도서지형을 갖춘 도시국가라는 특성을 고려해야 하며, 시장친화적인 요소도 강해 최저임금이 기초생활지원금에 절반도 되지 않으며, 해고와 고용에 대단히 자유롭고 준조세와 법인세의 부담도 매우 낮다.

동해 상에서 러시아와 한반도, 일본 열도를 한 지점에서 이어주는 허브지점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또한, 금융업도 발전하였고 이에 못지 않게 전자산업과 화학, 해양 플랜트를 위시한 조선 기자재 산업도 발달했다.

해성국령 어비스군도에서 발견되는 어비스 유물들은 대체로 해성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해성 어비스조합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민간에게 경매나 직거래를 통한 방식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특히, 해성 어비스조합에서 발표한 유물 등급 중에서 "특급"에 경우에는 해성국에서 전적으로 관리 및 유지할 권리가 있다. 어비스군도를 통한 관광업도 국가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수출구조는 제조업과 석유 관련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 뒤로 관광업과 의료-약학-화학-플라스틱 산업, 제철업, 의류업, 식품업, 농업, 광산업 등이 뒤를 잇는다.

사회

자세한 내용은 해성국/사회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해성행정시의 모습.

구성원

해성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성국 국민뿐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여 생활하는 외국인도 증가하였기에, 그들의 문화와 생각이 해성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 문화

공화독재 당시의 탄압, 그리고 이러한 탄압의 잔재들로 인해 정장년층에서 소비되는 문화와 청년층에서 소비되는 문화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양성평등의 기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노동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800시간에 다다르며, OECD 평균보다 약 200시간 정도 많다. 한국에 비해서 그리 큰 폭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하위계층의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노동을 통해서 국제 경쟁력을 대폭 증대시키고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최대한 이들의 편의를 봐주는 식으로 무마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국가에서 일정 노동 시간을 넘기면 해당 기업에 대해 높은 비율의 노동세를 매기는 방식. 선진국처럼 특정 시간 동안에 노동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일반적인 선진국들에 비해 생산효율이 소폭 낮다는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즉, 노동시간과 노동 효율이 비례되지는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조사결과.

치안

해성국의 치안은 2017년 기준 세계 15위로, 최고 수준에 이른다. 다만 외국, 동아시아 사정을 잘 모르는 유럽 혹은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주변 국가들의 사정으로 굉장히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치안과 안보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대표적인 모습.

해성국에서의 번화가는 소매치기를 보는 것이 어려우며,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도 매우 안전하다. 해성인이라면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대도시만 나가도 소매치기가 창궐하였고, 지하철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하는 경우가 많은 편. 특히 미국의 지하철은 슬럼가마냥 음침하면서도 낙서가 되어 있어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다 준다.

지문/주민등록번호 체제를 통해서 대단히 높은 범죄 검거율을 자랑한다. 현재 2017년 기준으로는 약 89.3%.

설문 조사 결과, 많은 국민들이 밤에 혼자 걸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민들 대다수가 밤에 혼자 걷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나라들은 캐나다, 뉴질랜드, 덴마크, 슬로바키아, 한국, 일본이며,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에서도 길거리에 성범죄와 절도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매체의 발달과 정보접근성, CCTV의 대거 설치와 함께 대한민국과 일본처럼 총기 소유를 엄격히 규제하는 나라이기에 총기를 이용한 범죄나 사고가 굉장히 들물다. 가끔씩 지방에서 유해 동물들을 잡으려다가 오발 사고를 내는 경우가 총기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및 지역분쟁에 대해서도 폭력적인 사태로 번지는 일도 드물며, 테러로 불리는 일은 건국 이래 최소 단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자국의 치안에 적응된 특성상 외국에서도 국민들이 겁도 없이 활동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매월 여행 안전 교육을 실시하여 예방을 시도하고 있다.

문화

자세한 내용은 해성국/문화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해성국의 문화

해성국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 혹은 러시아 및 중국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문화가 복합적인 형태의 모습으로 변화해 왔으며, 특히 한국과 일본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토착민들의 문화와 지리, 풍토로 인하여 복잡한 문제로 분명히 일본과 한국풍을 가지고 있으나, 고유의 문화가 일구어져 왔다.

해성인들은 자신들의 정통문화에 대해 자랑스러워 한다. 주변국들에서는 중국의 문화 대혁명 혹은 한국의 문화 검열과 같은 문화적 병크를 맞이하고 있을 때에도 해성국은 공화 독재시절부터 해성문화부흥운동(海盛文化復興運動)을 펼치면서 문화 보존 정책을 이어갔다.[2]

해성국의 문화는 즉 한국과 일본풍의 문화가 적절히 석인 '하이브리드 문화'이면서도 고유의 '해성'의 정체성을 놓지 않은 욕구가 상충되어 일구어진 부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음식/요리

해성국의 음식 문화는 한국과 일본의 음식문화를 적절히 배합되어 만들어졌다. 한국풍의 음식문화를 통해 적절한 채소와 고기와 함께 손맛을 중요시하는 경향과 함께 일본풍의 음식문화를 통해 생식(生食), 소재의 맛을 중요시하는 양념류, 상차림 예절이 생겨났다. 음식 문화에서도 '하이브리드문화'의 모습을 보이는 것.

전통 요리중에서는 고기를 이용한 음식보다는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다. 사면이 바다라는 특성과 함께 고기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점을 반영.

최근에는 중국식 요리풍이 생겨나면서 기름을 이용한 튀김 음식, 향신료 음식이 발달하고 있다.

만화/서브컬쳐

해성국의 서브컬쳐 산업은 대단히 인기가 높다. 일본과 대만보다 서브컬쳐에 대한 대우가 최고조에 이르는 나라로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정발되고 있을 정도. 특히 모에화에 관련된 산업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일본 서브컬쳐 사이트에서도 이러한 해성국을 위한 전용 사이트 혹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사실, 해성국의 서브컬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이는 만화나 서브컬쳐 산업이 공화독재시기의 정부의 주도로 친정부 및 선동물로 우후죽순 내놓아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0년대 청년층의 주도로 이러한 서브컬쳐 산업이 재개되었고, 현재는 정장년층도 크게 소비되고 있는 추세이다.

만화나 서브컬쳐는 최대 수입국인 일본의 영향력을 많이 받아서 일본의 만화나 서브컬쳐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친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해성국에서 수출되는 대다수의 작품들은 같은 언어권으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에서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실정이 되면서, 일본과 대한민국의 서브컬쳐 산업에서 중간 유통업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개척동인제(開拓動人祭)라는 동인 행사가 있으며, 이는 일본 코믹 마켓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동인 행사이다. 그 뒤를 대만의 팬시 프론티어가 잇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러한 서브컬쳐를 사회 주류에서 어느정도 배제하는 경향이 크지만, 해성국은 다르다. 정치인과 주요 인사들이 당당히 동인(同人) 인증을 하는 곳이 해성국이다! 현 국무대신인 김예실도 스스로 동인임을 인증했으며, 왕실에서도 동인행사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포착되었다. 특히, 현재 매금왕인 전화량은 역대 매금왕들 중에서도 가장 서브컬쳐 활동에 능통해 있으며, 서브컬쳐 산업에 진흥을 위해 여러 관료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알려진 사실이다.

관련문서

각주

  1. 현재의 표기법은 국립국어원 일본어 표기법이며, 해성국에서 특별히 규정한 일본어 표기법이 있으면 수정해주시면 됩니다.
  2. 다만, 당시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대부분의 매체는 친정부 혹은 선동물인 형태가 많았으며, 지금도 정장년층에서는 청년층의 문화 소비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