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국의 여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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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해성국의 여초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 독립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에서 비롯되었다. 1945년~1951년 사이에 벌어진 잦은 폭동과 내란을 비롯한 대내적 혼란은 많은 청장년층 남성들의 수를 급감시켰다. 독재 공화정권에 수립 이후에는 내부의 경제 사정을 위하여, 많은 남성들이 해외로 강제 파병 및 징용되어 희생되었다. 남성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성들은 국내에서 각종 산업에 투입되어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하였다. 1980년대 왕정복고 이후로는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경제 발전 정책의 성공하였고, 이후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는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여초 사회로 변모한 원인

  • 역사/문화적 원인으로는 해성국이 오랜기간 부계 혈통의 가문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비롯되었다. 전근대 시기에도, 여성의 인권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재산의 세습과 상속에도 상당 부분 관여하였기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의 형성이 비교적 힘들었다. 또한, 이러한 문화에 따라 1940년대에 남성인구의 급감은 정치, 경제, 사회적 주도권이 부득이하게 여성의 손에 들어가면서 모계 사회의 구조가 형성되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예외적으로는 해성 노씨 정도.
  • 정치적 원인으로는 1940년대에 혼란스러운 기간 동안 많은 남성들의 수가 급감함에 따라 여성의 사회 진출과 경제 원동력으로서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여권도 함께 성장하였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는 여권이 남권을 압도할 정도였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여성 국무대신 시대"가 열리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사회적 원인으로는 남성의 수가 급감하면서, 여성의 진출 방향이 다방면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여성이 사회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과 그 역할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남성들은 따로 연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남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모계 사회 구조로 개편된 해성국에서 그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고 보고 있다.

여초 사회의 모습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모계 사회가 형성되는 구조에 이르면서 남성은 사회적 입지에서 뿐만이 아니라, 성문화에서까지 소극화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사상기조들의 난립으로 남성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격당하는 극단적 사회구조는 피할 수 있었다.

남성들은 노후 생활은 물론, 청·장년기에서 조차 재산 문제에 대해 큰 타격을 입었고, 남성의 경제력은 부유하고 경제력이 있는 여성 혹은 사회보장제도에 기반이 되었다. 남성의 전반적 나약화는 국내의 민주화 및 선진화에 따라 인구 감소 문제와 함께 결합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남성들은 모계 사회 구조를 혁파하기 위하여, 각자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여 남성 인권 향상을 위하여 주기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주요 사회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서, 미술과 예술 및 의학 분야에서는 여성을 압도할 수 있는 기반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남성의 자립운동은 모계 사회 구조에도 큰 영향을 주면서 남성들이 인권이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기형적 성비로 인하여 정부에서는 사회적 일부다처제가 심각히 고민되었으나, 무산되었다. 현재는 남성의 권리 향상과 남성 인구의 향상을 위하여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결혼 및 출산 문제에 대한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성평등에 대한 대비책 및 법적 기반을 마련한 사회질서를 구축하여 예기치 못한 사회문제에 대두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적 결정권은 소수자인 남성이 쥐고 있다고 보고있으나, 남성이 내키는대로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아닌, 성적 소수자인 남성이 여성의 적극적인 어필에 대해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또한, 근친상간에 대한 가능성이 타국에 비해 높은 만큼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대비하기 위하여 법률을 구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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