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국령 어비스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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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Libancourtish Abyss Islands
해성국령 어비스군도
Flag of Libancourt.jpg Coat of arms of .Libancourtish.png
국기 국장
Libancourtish map.png
한반도 동부 상의 위치
정치
공용어 한국어(韓國語)
지역어 해성어
정부 형태 해성국의 자치령
총독 이혜린
매금왕(寐錦王) 전화량
역사
자치령 편입  
 •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 1945년
 • 자치령화 1959년
지리
면적 124.345㎢
시간대 UTC (UTC+9)
인구
2016년 어림 522,302명
경제
통화 해성 화

해성국령 어비스 군도(영어: Libancourtish Abyss Islands)는 한반도 동부상에 위치한 자치령이며, 공용어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이외에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1900년대 이전까지는 무인도 혹은 전설속의 섬으로만 알려졌을 뿐, 무주지로 구분되었으나 1900년에 해영국에서 파견된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의 발견으로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최대도시는 해원시이다. 본 자치령은 해성국의 귀속되어 있다.

개요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는 해성제도에서 동쪽으로 153㎢에 떨어져서 위치해 있는 고립된 군도이다. 1900년 이전까지는 사람이 살수 있었나, 없었나를 명확히 나타내질 못 할 정도로 밝혀진 바가 없는 곳이었으나, 심연굴 내부에서 발견되는 기도하는 해골을 통해서 인류가 살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나라들의 관측선도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를 사람이 살기 어려운 "바위섬"으로만 인식했으나,[1] 해영국에서 파견된 선교사와 탐험가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생태계와 심연굴이 발견되자, 본격적으로 섬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발견 과정

1900년대에 발견된 어비스군도의 기이한 식생과 심연굴은 많은 국가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심연굴의 비정상적인 생태계와 그 곳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의 가치가 대단히 높아지자, 많은 탐험가들이 이곳을 탐험하기 위하여 탐사대를 파견했다. 1904년, 일본제국이 해성국을 합병한 이후에도 이곳은 일본제국의 독립적인 자치령으로서 일본 내부에서도 수많은 탐험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발견 이후

그러나, 기이한 심연굴의 내부를 잘 알지 못했던 각 나라의 탐사대들은 심연굴 내부의 혹독한 환경과 생물체들에게 모조리 몰살되고 말았다. 특히, 일본은 9번에 걸친 탐사대를 파견했으나, 마지막 탐사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탐사대가 전멸했음을 판단하면서, 종전 직전까지에도 이곳에 대한 탐험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1945년, 해성국이 독립하면서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도 귀속 자치령으로서 독립하였다. 이에 해성국 정부는 이곳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탐험가들의 활동에 용이하도록 가파른 섬의 외부를 개발하여 심연굴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를 중심으로 도넛 모양의 마을들이 차례차례 건설하였다. 이러한 마을들은 탐험가들의 주요 용품을 판매하거나, 내부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감정하고 조합에 맡겨 제한적인 유통을 담당했으며, 탐험을 위한 교육시설을 구비하여 철저히 대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탐험에 대한 성과가 나오게 되었으며, 수많은 탐험가들과 탐사대들의 희생을 심연굴 내부의 생태계와 유물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음에 따라 해성국령 어비스군도를 방문하는 이들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심연굴(深淵窟)

자세한 내용은 어비스(深淵窟)를 참조. 해성국령 어비스군도의 존재 의의이자, 세계 유일 최후의 심연으로 불린다.

각주

  1. 이 이유는 어비스 군도의 겉표면은 높게 뻗어있는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어 육안으로 관측해서는 사람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섬 주변에서 뿜어져나오는 특유의 역장으로 섬의 실존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