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행적

생애

초창기

시민국 출신이다. 유입종자 한국가상사회(당시 카페명 한국가상회사)에 입문한 것은 아즈마의 소개. 당시 신도운송그룹 (신도운수, 신도메트로, 신도항공 등)을 운영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검단신도시에서 가정, 도화, 인천시청, 소래지구를 경유, 안산까지를 연결하는 중전철 노선인 "신도 1호선"을 운영하였는데 이후 2015년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이 선형을 따라 그대로 개통이 되었다.[1] 초창기 에스엔그룹의 에스엔리테일사와 협력하여 신도 1호선의 주요 역에 에스엔플라자 등의 대형 마트 및 백화점을 유치하는 식으로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큰 수익을 거둔다. 그러나 아즈마의 일방적인 에스엔그룹, 신도그룹 관련 인사 영구탈퇴 조치로 카페에서 탈퇴당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아즈마와 대립하여 결국 시민국에서도 불명예로 활동을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후 한동안 현식이 임시로 세운 가상사회 카페에서 활동하다 9월 경 영구탈퇴가 해제되며 한국가상회사 카페로 복귀한다. 10월 경에는 라핀느 캠벨 시민국 대통령에게 사죄를 하고, 시민국 활동도 재개. 이 때 한국가상회사-가상사회 통합 논란에서 현석, 현식 등과 함께 활약하며 중심 인물로 떠오른다. 슨임 등의 보수 세력이 욕설 파동을 일으키며 통합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려 했으나, 이들의 공작은 실패하고 결국 두 카페는 통합되며, 아즈마는 매니저직에서 사퇴하게 된다.

이후 시민국 활동에 관해서는 시민국 위키의 "도미니크 드 시슬리" 항목 참조. 이전 판에서는 프리드리히 한양이라는 닉네임으로 시작했다고 되어있는데 원래 닉네임은 민군이었고, 프리드리히 대제를 존경하여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한양 가문은 자체적으로 만들었으나 6월에 시민국 활동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면서 해산. 같은해 11월 시슬리 가문에 지금의 시민국 이름으로 입회한다.

UVS 활동

거진국, 일구국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2007년 10월 신진국이라는 가상국가를 세운다. 이후 UVS에 가입. 당시 UVS의 설립자 아즈마와 개인적으로 반복하는 관계여서 UVS 가입을 보류하고 있었으나, 한가사 통합과 아즈마의 가상국가 이탈 이후 11월 경 UVS에 공식 가입한다. 일구국, 마법국 등의 설정 가필에 참여하였고, 강서국광령국의 운영권을 인수해서 잠시 맡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 하여 탈퇴를 시도하였으나 2010년 4월 이후 다시 복귀하였으며, 이 때 신진국을 비롯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상국가 설정을 리부트하여 신진공국을 건국한다. UVS 운영지원국장 등을 지냈으며 트윈스타 정권에서도 요직을 맡았다.

2012년 이후 대민련의 부상으로 UVS가 쇠퇴해가기 시작한다. 이 때 토끼는 한국가상사회와 폴리스디움 인사들 사이의 화해를 적극 추진하였으며, 자신부터가 앞장서서 폴리스디움 폭동에 대하여 이서빈 등 관련자에게 사죄하였다.[2] 한편으로 UVS-UVN 통합도 추진하였으나 이 모든 정책에 반대하던 트윈스타가 쥬니와 함께 UVS의 글을 전부 삭제하고 탈퇴하여, 현재 사료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3]

UVN 활동

UVS와 UVN의 통합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UVN 운영자 정대성이 "짜증난다"며 UVS를 상대로 노골적 적대감을 표하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4] 2011년 중순부터 토끼는 이미 UVN 카페에 가입하여 UVS와 UVN 사이의 중재를 시도하는 대화 창구 역할을 맡았으며, 2012년에 들어서는 쥬니와 함께 사과문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2차 북크로센 전쟁 당시 미사키대첨관연합회의 크로센 괴뢰 정부에 맞서 세운 북크로센을 지지하였다. 이미 제1차 북크로센 전쟁 당시에도 양합민주공화국 및 그 배후의 대첨관연합회를 상대로 무쌍을 벌이며 자유 크로센라이즈 연방 공화국을 지지한 바 있었으며, 이 때의 일련의 기록들을 종합하여 작성한 <북크로센 드립 사태 총정리>가 UVN 유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첨관연합회의 rupert2005를 상대로 한 반 루퍼트 운동을 주도하며, 당시 전체 게시판 스탭으로서 "국제사범으로 지정하겠다" 등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던 rupert2005의 만행을 인터내셔널과 함께 폭로해, 그를 탄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5]
  1. 물론 계획은 인천 2호선 쪽이 더 빨랐고, 신도 1호선의 노선을 책정하면서 인천 2호선을 따라한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2. [SBC제일일보 이유민 전 대통령, 3·26 정변 공식사과-], 가상국제연합 카페, 2012-11-24
  3. 3.26 사태가 그저 폴리스디움 폭동으로밖에 불릴 수 없는 이유이다. 반론의 여지가 있는 자료들을 몽땅 삭제하고 나갔기 때문에 용어가 증거 자료가 훨씬 많은 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론 자료가 있다면 해당 항목에 추가바람.
  4. uvs에게 알립니다. 정대성, 2011-11-26
  5. 정작 인터내셔널은 그 후 토끼를 뒷통수치기의 명사라고 깠다는게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