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나야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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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협의회
정회원국
크라스나야 대공국 카스캐디아
크라스나야 대공국
Красивая Великого княжест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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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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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국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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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국가 크라스나야 대공국 국가
정부 형태 연방제, 양원제
크라스나야식 입헌군주제
수도 크라스크
북위 54° 35′ 07″ 동경 137° 31′ 17″ / 북위 54.585319° 동경 137.521344° / 54.585319; 137.521344
행정수도 아프릴리우스
북위 50° 01′ 28″ 동경 142° 06′ 10″ / 북위 50.024323° 동경 142.102733° / 50.024323; 142.102733
공용어 크라스나야어, 사할린어
형성 과정
크라스나야 도시동맹 1290년 9월 11일
사할린 왕국/쿠이 왕국 1385년 10월 23일
크라스나야 공국 1856년 2월 14일
크라스나야 대공국 1860년 11월 16일
정치 정보
차르 안드레이 크라스나야
수상 니콜라이 큐니르
부수상 세르게이 리
황실평의회 의장 엘리자베타 크라스나야
최고평의회 의장 니카노르 루테지니아
그외 정보
국토 면적 532,200 km2
시간대 UTC +9 ~ +10
인구 65,375,280 명(2015년, 22위)
GDP (명목) 명목 GDP 2,834,018,388,000 달러
1인당 명목 GDP 43,350 달러
GDP (PPP) PPP GDP 3,386,439,504,000 달러
1인당 PPP GDP 51,800 달러
ISO 3166-1 KS
국가도메인 .ks
국제전화번호 +83
통화 크라스나야 루블 (KUB)

크라스나야 대공국(영어:Grand Dukedom of Krasnaya/노어:Красивая Великого княжества Krasivaya Velikoye Gertsogstvo)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유즈노 크라스나야 제도를 비롯하여 오딘제도, 사할린 섬, 쿠릴 열도, 스더니츠키 제도, 프리모르스키 지방 및 속령인 세베로 크라스나야 제도, 아이리스 제도, 달니아(다롄)를 점유하고 있으며, 국토의 대다수가 오호츠크해에 있어, 러시아 연방에 둘러쌓여 있는 형태이다. 서쪽으로는 아무르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육로로 맞다아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을 경계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주보고 있으며,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남부에 있는 두만강을 경계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소야해협과 네무로 해협을 기준으로 일본과 마주보고 있으며, 동쪽은 태평양과 마주하고 있다. 수도는 유즈노 크라스나야 제도에 위치하고 있는 '크라스크'(Краск, Krask)이며, 사할린섬의 중부에 위치한 '아프릴리우스'(Aprilius)가 행정수도로써 역활을 수행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극동아시아에 속해 있으나, 문화, 정치, 사회적으로는 유럽과 훨씬 가까워서 아시아의 유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크라스나야는 1930년대 후반부터 경제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케인스키 학파의 본고장으로서 현대 주류 경제학의 중심지이자 거시경제학의 시발점이라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크라스나야는 케인스키의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미국의 자유방임 시장경제와 소련의 중앙계획 공산경제에 맞서는 혼합자본주의 체제를 현대적으로 개발한 국가이기도 하다.

케인스키에 따르면 자유시장체제에서 소비의 과잉 도는 과소가 요동을 치고 그것이 경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의 결점을 보완해야 한다. 즉 국민의 과소 소비는 공장 자동화 등에 의한 기업의 대량생산물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생산 부분의 고용 및 투자부진이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단에 따라 케인스키와 크라스나야 정부는 생산과 소비, 화폐, 고용, 금융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거시경제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혼합자본주의 체제에 힘입어 크라스나야는 극동의 변방소국에서 20세기 경제 혁명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된 국가중 하나가 되었다.

지리

동북아시아의 지형도

크라스나야는 국토의 절대다수가 오호츠크해와 그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러시아 연방에 둘러쌓여 있는 형태이다. 서쪽으로는 아무르강을 경계로 러시아 연방과 육지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을 경계로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소야 해협과 네무로 해협을 경계로 일본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쿠릴열도와 스더니츠키 제도의 동안은 태평양과 마주보고 있는 형태이다.

국토의 절대 다수는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기에 현재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으며, 빙하기 당시의 유즈노 크라스나야 제도등의 오호츠크의 섬은 육지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으다. 홀로세기의 시작시기인 약 1만년 전, 마지막 빙기가 끝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대다수의 국토가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평야를 제외한 국토의 절대다수가 산악지형이다. 대륙부인 프리모르스키 지방에는 1,300km 길이의 시호테알린 산맥이 있으며, 절대다수의 평야는 해안가와 아무르강 인근 지역에 펼처저 있으며. 해양부 중에서 가장 큰 섬인 사할린 섬에는 서(西)사할린 산맥과 동(東)사할린 산맥이 섬의 양쪽으로 펼처저 있으며, 그 사이에 거대한 평야가 자리를 잡고 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다.

하천의 유량은 1년내내 일정한 편이며, 가장 큰 강으로는 대륙부에 속해있는 아무르강과 그 강의 지류인 우수리강이 있다. 해양부에서 가장 큰 강은 사할린 섬의 포로나이 강과 팀 강(Tym River, Sakhalin)이 있다. 하천은 정비가 잘 되어있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결빙으로 인하여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크라스나야는 일부 속령을 제외한 영토의 대다수가 북위 42도~북위 56, 동경 130도~ 동경 155도 사이에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대륙부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냉대 동계 소우 기후(Dwc, 동계 한랭 건조, 선선한 여름)이며, 해양부는 오호츠크 기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냉대 습윤 기후(Dfb, 동계 한랭, 따뜻한 여름, 건조기 없음)를 띈다. 연간 강수량은 약 500~1000mm 사이이며, 1년내내 강우량/강설량이 일정한 편이다.

기원

이 지역에 루스인이 정착한 것은 13세기 전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땅에 최초로 성립된 국가는 크라스나야 도시동맹/루스 도시동맹이다. 허나 도시동맹은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느슨한 연합의 체제였지, 중앙집권의 국가가 아니기에 결국 내분으로 망하였고 실질적으로 이 땅에 최초로 들어선 중앙집권 국가는 사할린 왕국/쿠이 왕국이라고 불리우는 국가이다.

명나라의 '고이서기'(苦夷書記)에서는 사할린 왕국과 조선을 비교하여, '조선은 순종적인데 반하여 쿠이는 반항적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청나라의 '고엽서기'(庫葉書記)에서는 사할린 왕국을 '중화의 새로운 질서에 반발한 어리석은 놈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명이 적은 고이서기와 다르게 청이 작성한 고엽서기에서는 수 많은 마찰로 청나라가 수차례의 무력을 행사하였고, 청과의 마찰로 하여금 사할린 왕국이 급격하게 쇠퇴한 상황에서 제정 러시아의 장군인 '렌코비치 크라스나야'(Lenkovichi Krasnaya Ленковичи Красная)가 군을 이끌고 공격을 해오면서 이 땅의 국가의 명맥이 끊기게 된다.

근대 크라스나야의 뿌리는 제정 러시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1854년에 성립된 크라스나야 공국으로 시작하여 1890년에 크라스나야 공작이 대공작이 되면서 성립된 크라스나야 대공국으로 이어지는 이 땅의 국가의 역사는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이전까지제정 러시아 역사의 일부분이었으며, 10월 혁명으로 하여금 러시아라는 국가가 실질적으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고, 크라스나야 대공국이 주권선언을 함으로써 자주국가로써의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다.

역사

이 땅의 루스인을 기원을 찾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13세기 전후로 성립된 크라스나야 도시동맹과 사할린 왕국/쿠이 왕국을 예로 들 수 있으나, 그들의 역사는 렌코비치 크라스나야가 이 땅을 정복한 이래에 약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단절되어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근대 크라스나야의 시발점은 크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샤르데나의 연합군과 전투를 치뤄내야 했다. 하지만 영국은 당대 최강국이었으며, 프랑스 역시 열강에서 2위라는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 역시 몰락 이전이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다 신흥국 샤르데나까지 합세한 전쟁은 러시아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불리하기만 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세바스토폴 포위전과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러시아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스트라 파벨리크 크라스나야 공작이 성공적으로 제2차 세바스토폴 포위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3차례의 전투에서 대승을 구하면서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그의 뛰어난 전술로 하여금 전세가 뒤집히고, 연합군들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1956년 파리에서 맺어진 강화조약에서 러시아는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게 되었고, 제정은 크라스나야 공작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하여서, 크라스나야 제도와 사할린 섬을 포함한 극동 일대를 그의 영지로써 인정하고 대규모의 자치권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1856년에 발생한 제2차 아편전쟁에서 크라스나야 공작이 베이징 조약을 주선하면서, 러시아는 염원하던 부동항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고, 공작은 그 공을 인정받아서 러시아에서 유래없는 대공작의 칭호를 받고, 황제로부터 수 많은 특권을 받게 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는 연합국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전하게 되지만,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서 국민감정이 폭발하면서 2월 혁명이 발생하고, 케렌스키임시정부가 성립되게 된다. 케렌스키임시정부는 러시아의 새로운 군주로써 크라스나야 대공을 추대하였으나, 크라스나야 대공은 이를 거절하였고 이후 10월 혁명이 발생하면서 크라스나야는 주권선언을 하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