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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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

쿠릴 열도(키탄어/러시아어 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 아이누어: Кур/Čupka/Kurumise, 문화어: 꾸릴 열도)는 키탄에 있는 총 길이 약 1300km의 도서군이다. 며 캄차카 반도일본 홋카이도 사이, 오호츠크 해북태평양을 가르는 위치에 펼쳐져 있으며, 크고 작은 약 5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에서는 이 열도를 지시마 열도(일본어: 千島列島)라고 부른다. 행정적으로는 남쪽을 유즈노 쿠릴스크, 북쪽을 세베로 쿠릴스크로 나뉘어져있다.

쿠릴 열도는 본래 일본과 러시아 간에 영역 갈등 지역으로서 현재는 러시아로 부터 독립한 키탄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일본이 키탄에게 쿠릴 열도 북단 4개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석유, 금, 황 등의 해저 지하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경제적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열도 남부의 4개 도서군을 소위 북방 영토(北方領土)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자연과 주민

사리체프 봉의 분화. 쿠릴 열도는 전체적으로 지각이 불안정하다.

쿠릴 열도는 판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열도로 100개의 화산이 있으며 그 중 35개의 화산이 활화산이다. 지진이 활발하다. 쿠릴 열도 200Km 동쪽에는 쿠릴 해구가 있다. 해안은 바닷말, 바닷물고기와 해달의 서식지이다.

주민의 대다수가 키탄족이며, 그외엔 러시아인이 가장 많고 사할린 한민족등도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남부 4개 도서군에 살던 일본인제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황철광, 유황 등의 자원이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쿠릴 열도 분쟁

이 지역에는 원래 아이누, 니브히족, 윌타족 등 여러 선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15세기 신요키탄족들이 대거 건너와 이들을 복속시키고 살기 시작하였고, 그러다 18세기에는 러시아인, 일본인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키탄러시아일본에게 복속당하자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일본은 사할린 섬을 포기하는 대신 쿠릴 열도를 가져가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쿠릴 열도는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1998년 키탄족이 러시아로 부터 독립하여 키탄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자 다시 키탄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실효지배하는 쪽은 키탄이지만 일본유즈노 쿠릴스크(치시마)를, 러시아세베로 쿠릴스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쿠릴 열도의 섬과 행정구역

괄호안은 일본 명칭이다.

세베로 쿠릴스크

유즈노 쿠릴스크

각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