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관군

첨관군 로고

첨관 국방군(尖冠 国防軍, SenKan Natioal Defence Force)첨관의 국방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첨관경찰예비대첨관해상경비대를 전신으로 한다. 2017년 1월 기준 18만 5000명의 병력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군사력 순위 10위를 차지한 강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 이후 본디 모병제였으나 1963년 군사 쿠데타 이후 징병제를 도입했으며 1995년 폐지되었다. 첨관 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주둔해 있었고 태평양 전쟁 말 최대의 격전중 하나인 첨관 전투의 무대로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비극을 겪었다. 독립 이후에 첨관독립군을 기반으로 조직된 첨관경찰예비대와 상선학교 생도들이 주축이 된 첨관해상경비대는 이후 1955년 첨관 국방군으로 승격되었고 국방부가 신설되었다. 공군은 1957년 육군항공대에서 분리창설되었다. 현재 첨관군은 "비선제공격, 필복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먼저 공격은 하지 않되, 공격이 들어오면 반드시 복수한다는 원칙으로 신이치가 1968년 원칙으로 지정한 이후 계속 내려져오고 있다. 여담이지만, 육군을 제외한 각군 로고에는 국장이 들어가 있으나 깃발에는 명시성을 이유로 왕실 문장을 넣지 않고 있다. 첨관군은 여느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군부독재를 받았고 군인을 주축으로 한 권력구조는 군에 막강한 권력과 지위, 영향력을 주었다. 1956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 첨관군부는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 친미적인 제스쳐를 취했고 1965년 파병을 결정, 료우에 리치요 소장이 지휘하는 32,000명의 병력이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첨관군은 각종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첨관군도 1973년 철수했고 료우에는 국가적인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신이치 전 대통령의 급사를 기회로 쿠데타를 일으킨 사토 류이치를 제압하는 것으로 주가의 최고조에 달했으나 그도 독재자로 군림하게 된다.

료우에 리치요는 첨관을 군사국가로 개조하기 위해 각종 분야를 군과 연계시켰고 징병제 강화와 교련과목 추가등 전 국민이 군부의 손길에서 피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륙과 거리가 있는 지리적 요인상 외부의 위협이 적어 이러한 행보에 대한 정당성이 부족했다. 그러자 일본을 주적으로 설정하려 했지만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중이던 미국의 압력을 받아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1992년 군부독재정권이 몰락하고 신임 대통령 사토 에이치는 대대적으로 군부세력을 척결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군부세력은 1997년 첨관 쿠데타의 실패로 스스로 자멸하였고, 군부세력 중에는 월남에서 활약하거나 여러 경력이 풍부한 군인들도 있었으므로 한동안 첨관군은 전력공백에 시달렸다. 그래서 국방부는 청년장교들을 미국과 한국, 중국 등에 유학을 보내서 실력향상을 기대했고 이들이 귀국해서 첨관군의 향상을 이끌었다. 현재 첨관군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군사강국으로 성장한 상태이다. 육군 전력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 있지만 해군은 세계 최상위권, 공군도 우수한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각종 군사훈련에도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림팩과 레드 플레그가 대표적이다. 본디 독재정권 시절 첨관은 징병제를 실시하여 18~35세의 남성들이 15개월간 군복무를 해야 했지만 현재 첨관군은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륙과 거리가 있는 지리성 특성상 외부의 위협에 크게 누출되지 않아 안보적인 문제가 거의 없고, 그런 사정상 국방에 큰 위기감이 없어 모병제로 지원하는 병력만으로 병력을 충당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또한 징병제가 일제와 독재정권의 잔재로 인식되어 1993년 징병이 중단되고 1995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현 첨관군은 병력을 늘리지 않고 우수한 병력들만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염두해두고 있으며 오히려 주첨미군을 지원할 목적으로 비전투병력을 확충시킬 계획이다. 현재 군인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고 월급도 매우 우수한 편이며, 사회적 혜택이 따르기에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첨관의 국방의 상당부분은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첨관에 주둔중인 주첨미군은 사실상 육상방위의 주체라고 할 수 있으며 7함대도 첨관 해군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첨관이 첨관해 한복판에 위치한 지리적 거점으로서 미군은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서태평양 주요 군 비행장인 센칸지마 비행장과 토도지마 군항이 주요 거점이다. 미군은 냉전때 부터 한국-첨관-일본을 잇는 삼각 동맹체제를 구상해왔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군대와 교류를 맻으며 외교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서로 견재하는 현 정세상 첨관은 일본을 제외한 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맻고 있어 외교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본은 사실상 가상적국으로 두고 있다.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청산이 되지 않았고 EEZ 설정 문제와 나루미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사이에 둔 분쟁으로 사실상 양국은 전략을 구상할때 서로를 적국으로 암시하고 있다. 1999년 나루미 제도 위기까지 치르는 등 둘의 사이는 좋지 않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일본이 한국, 첨관 등 주변의 친미국가들과 마찰을 빛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