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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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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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함 애리조나일본군의 폭탄에 피격 받은 뒤 이틀 동안 불타올랐다. 함선은 인양 불가능한 파손을 입었다.
날짜1941년 12월 7일
장소하와이 주 진주만
결과 일본 제국의 기습 공격 성공, 미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교전국
미국
미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지휘관
허스밴드 킴멜
월터 쇼트
야마모토 이소로쿠
나구모 주이치
이와사 나오지
병력
전함 8척
순양함 6척
구축함 29척
잠수함 9척
전투기 ~390대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9척
전투기 558대
소형 잠수함 5척
피해 규모

총 사망자
군인 4181명 사망,
147명 부상, 민간인 103명 사상.
전함 9척 인양 불가능 침몰
순양함 3척 인양 불가능 침몰
구축함 3척 인양 불가능 침몰
전투기 398대 파괴, 45대 손상

2개월치 유류저장고 화재, 전량 손실

전투기 29대 파괴,
전투기 조종사 55명 사망.
소형 잠수함 1척 침몰

잠수함 승무원 2명 사망

진주만 공습(真珠湾攻襲 (しんじゅわんこうげき), Attack on Pearl Harbor)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 비행기들이 미국 하와이 주의 오아후 섬 진주만에 있는 미국군 기지에 가한 선제 공격을 일컫는다.

개요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이 진주만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 되었다. 이 공격으로 15척의 미 해군 함선이 손을 쓸 수 없을정도로 공격당해 굉침했고, 443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4,181명의 군인 사상자와 103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은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시작으로 폭격을 계획하였고, 나구모 주이치 부사령관이 지휘를 맡았다. 일본군은 이 작전에서 57명의 희생자를 냈다. 항구에 있지 않았던 태평양 함대항공모함 3척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국은 이 때문에 1945년 초반 까지도 전세를 역전 할 수 없었다. 미국 국민들은 진주만 공습을 배신행위로 보고, 일본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일치단결하여 복구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이는 훗날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진주만 공습은 진주만 폭격, 진주만 전투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진주만 공습이라고 더 자주 불린다.

진주만 공습의 배경

일본 제국만주로 진출한 몇 년 뒤인 1939년부터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일중전쟁). 1941년에는 일본과 미국과의 오래된 긴장이 더 고조되었다. 미국영국은 일본에 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철 수출을 금지했으며, 석유 수출 금지, 미국 내 일본 재산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로 중국 내에서의 군사행동을 위축시키고자 했다. 1941년 11월 26일헐 노트를 마지막으로 외교적 노력은 절정에 다다랐고, 도조 히데키 총리은 자신의 각료들에게 이것이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이로인한 별다른 타격을 입지 못했는데, 그것은 이미 1935년에 만주의 다칭 유전을 손에 넣었지만 외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 육군의 청년파 장교들은 도조 히데키 총리가 전쟁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집단행동의 전조를 내비쳤고, 도조 히데키는 세가지의 선택 중에 하나를 고르는 수 밖에 없었다.

  • 미국영국의 요구에 응하여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
  •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청년파 장교의 반란으로 136년 일본 제국의 역사를 뒤로하는 것.
  • 이것을 계기로 아시아에서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제국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

도조 히데키는 이 세 가지 중에 마지막을 선택하였다.

진주만 공습의 목표는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해군력을 무력화하여 전면전이나 동시 다발적인 준비된 공격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이었다.

11월 26일은 일본의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향해 출정한 날이다. 일본은 미국이 제시한 헐 통지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었다. 그 근거로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보고서를 주일 미국 대사관의 조지프 그루(Joseph Grew) 대사가 본국에 송신하였으나, 유럽 내 전쟁 문제에 몰두하던 미국 정부는 그것을 묵살하였다.

진주만 공습 직전의 상황

일본군의 공격 임박설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이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41년 1월 주일대사 조셉 그류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계획 정보를 입수했다. 공격개시 수시간 전에 진주만 외곽에서 한 대의 잠수함이 발견되고 다른 한 대는 원인 불명인 채 침몰되었으며, 오아우 북쪽 해안 레이다 기지에서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포착되었다. 많은 관리들은 일본군의 공격임박설을 알고 있었으나, 그 대상이 일본으로부터 5,000 마일 떨어진 진주만이 아닌 필리핀이라고 생각했다. 1941년 진주만의 일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일과가 진행되었지만, 진주만 북쪽 200마일에서는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항진하는 항모 위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하고 있었다. 일본군 항공기의 라디오에는 하와이 방송국에서 흘러 나오는 달콤한 음악이 들려 오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어서 공격 목표물을 훤히 볼 수가 있었다고 그 당시 공격에 참가했던 일본제국 해군 소좌 미쯔오 후지다는 회고했다.

심지어, 레이더에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당일 아침녘에 오기로 한 B-17 폭격편대로 오인하게 된다. 결국 일본군의 공격의 시작 직전에야 진주만과 미국 대사관에 일본 제국의 선전 포고문이 도착하게 된다.

경과

일본군의 참여 군함

  • 제1항공함대 - 사령장관 나구모 주이치, 참모장 쿠사카 류노스케
    • 제1항공전대 -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겸임
      • 항공모함 아카기 A6M 0식 함상전투기 58대
      • 항공모함 아마기 A6M 0식 함상전투기 58대
      • 항공모함 카가 A6M 0식 함상전투기 61대
      • 항공모함 토사 A6M 0식 함상전투기 61대
    • 제2항공전대 - 사령관 야마구치 타몬
      • 항공모함 소류 A6M 0식 함상전투기 62대
      • 항공모함 히류 A6M 0식 함상전투기 62대
    • 제3항공전대 - 사령관 하라 주이치
      • 항공모함 쇼카쿠 A6M 0식 함상전투기 70대
      • 항공모함 즈이카쿠 A6M 0식 함상전투기 70대
    • 특설항공전대 - 사령관 카도쿠라 소오지
      • 항공모함 타카오 A6M 0식 함상전투기 58대
      • 항공모함 아타고 A6M 0식 함상전투기 58대
      • 구축함 아키구모
    • 제3전대 - 사령관 미카와 군이치
      • 전함 히에이
      • 전함 키리시마
    • 제8전대 - 사령관 카토 모리이치
      • 중순양함 토네
      • 중순양함 치쿠마
    • 제1수뢰전대 - 사령관 오오모리 센타로우
      • 경순양함 아부쿠마
        • 제17구축대
          • 구축함 타니카제
          • 구축함 우라카제
          • 구축함 하마카제
          • 구축함 이소카제
        • 제18구축대
          • 구축함 카게로우
          • 구축함 시라메히
          • 구축함 카스미
          • 구축함 아라레
    • 제2잠수대 - 사령관 이즈미 키지로
      • 이19형 잠수함
      • 이21형 잠수함
      • 이23형 잠수함
    • 제1보급대 - 사령관 다이토 마사나오
      • 유조선 쿄쿠토마루
      • 유조선 켄요마루
      • 유조선 쿠니히로마루
      • 유조선 신코쿠마루
      • 유조선 토호마루
      • 유조선 토에이마루
      • 유조선 니혼마루

미국의 침몰 군함

  • 전함 네바다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오클라호마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애리조나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캘리포니아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펜실베니아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테네시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메릴랜드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전함 유타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경순양함 롤리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경순양함 헬레나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경순양함 호놀룰루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구축함 캐신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구축함 쇼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구축함 다운스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수상기모함 커티스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공작함 베스탈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 기뢰부설함 오글라라 / 수리불가능 파손 및 인양포기

진주만 공격 이후 상황

루즈벨트 대통령은 12월 7일을 치욕의 날로 선포했고, 미국인들은 일본이 본토로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전쟁 준비를 했고, 애국심에 군대에 자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