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스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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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펙터
William Edward Spectre
2015 스펙터 홀딩스 주주총회에서
2015 스펙터 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한빛민주공화국제8·9대 국무총리
임기 2016년 8월 29일~
전임: 국민의 힘(제7대)
후임: 미정(제10대)
신상정보
국적 영국 영국 외 1개국
출생일 1964년 8월 15일(1964-08-15) (53세)
출생지 영국 런던
거주지 영국 런던 런던 모던 팰리스
한빛민주공화국 단암특별시 울샘구 울샘관 (한빛세계관)
정당 공화당
학력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배우자 제니퍼 스펙터
자녀 애프라 스펙터, 해리 스펙터, 에릭 스펙터
부모 아버지 프란시스 스펙터, 어머니 클레어 스펙터

윌리엄 스펙터(William Edward Spectre, 1964년 8월 15일 ~ )는 한빛민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기업인이다. 현직 한빛민주공화국의 국무총리로, 전 스펙터 그룹 회장이자 전 한빛민주공화국 외교국방부 장관이다.

개요

영국 최대의 재벌이자 개인 보유자산 720억 달러로 2017 포브스 세계 부자 순위 4위를 기록한 인물

1964년 8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던 프란시스 스펙터와 클레어 스펙터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때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서 놀고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교시절엔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진학했는데, 당시 스펙터 총리의 동창이었던 제니퍼 스펙터 스펙터 홀딩스 부회장이 2005년 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고등학생이 생각하기 힘든 매우 독특한 사고를 가졌었다고 한다.

이때도 스펙터는 딱히 말이 없고 행동도 느릿느릿한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학교공부에도 별 뜻이 없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사냐고 물어보면 “나는 사람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고. 그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닌지 이후 구 애퍼처의 한 임원이 프란시스 스펙터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난 일이 있었는데, 고교생 윌리엄 스펙터가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자 프란시스 스펙터가 두말 하지 않고 그 임원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한다. 프란시스는 스스로의 인사관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고등학생 윌리엄의 사람 보는 눈을 더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

또 이 시절 스펙터가 제니퍼 스펙터에게 느닷없이 중국어 교과서 몇 권을 건네면서 “중국어 좀 배워둬라. 너 정도면 두어 달만 해도 웬만큼 할거다.”라고 했다. 아시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던 제니퍼 스펙터가 “그걸 뭐하러 배우냐?” 하고 물었더니 예의 그 심드렁한 표정으로 스펙터 왈 “가까운 미래에 중국은 큰 시장이 될거다”라고 하더라는 것.

공부는 꽤 했으나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고.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 졸업했다.


스펙터의 회장이 되기까지

1989년 10월 구 애퍼처에 입사해, 1999년 프란시스 스펙터 명예회장이 물러난 뒤 많은 기업들이 월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2000년 1월 한빛민주공화국으로 가 애퍼처 한빛을 세우고, 이후 사업을 확장하며 스펙터 그룹을 탄생시킨다.

스펙터는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주로 기술관련 서적을 탐독하거나 전자제품, 각종 기계류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관련 전문가들을 집으로 불러다 가르침을 청했다. 그는 애퍼처 부사장 시절 사석에서 “주말에 우리집으로 초청해 한 수 배운 독일 기술자만도 수백 명이 넘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NEC, 도시바, GM, 휴렛팩커드 등 세계 유수 기업의 CEO들도 한빛 방문시 스펙터 사저를 주요 방문지로 잡는다.

그의 소백동 사저를 자주 찾는 한 재계 인사는 “스펙터의 서가엔 경영학 서적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반면 미래과학, 전자, 우주, 항공, 자동차, 엔진공학 등 이·공학 관련서적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데, 전집류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그 책들은 스펙터가 직접 한 권 한 권 골라 읽은 것 같았다”고 전한다.

자동차 마니아인 스펙터는 유학 시절부터 중고차를 사서 엔진까지 샅샅이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곤 했다. 웬만한 전자제품은 콩알만한 부품의 기능 차이까지 꿴다고 한다. 국산 제품과 외국산 제품을 갖다놓고 부품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품질 격차의 원인이 된 부품을 밝혀낸 뒤 계열사 기술담당 임원을 불러 그것을 쥐어주기도 했다고.

회장으로의 활동

회장이 된 뒤 이듬해에 제 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미국인 고문인 오스틴에게서 받은 이른바 '오스틴 보고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2007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부모와 성별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러한 '신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고 스펙터 그룹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오스틴 고문에게는 매우 두둑히 챙겨줬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한빛 기업이 미국 기업들을 다 제치게 도와줬다면서 욕을 먹기도 했다고.

그룹 회의에서 심심하면 위기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매출이 100조를 넘어도 시장 흐름이 바뀔지 모르니 걱정, 매출이 줄면 줄었다고 걱정.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이렇게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게 여러 CEO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스펙터 성장의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텔의 前 CEO도 일본업체에게 메모리반도체 분야를 추월당한 다음엔 맨날 위기론에 빠져 있었다고.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답게 경영 방식 또한 철두철미하고 세세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前 스펙터 그룹 법무팀에서 일했던 이곤 클리터스 변호사가 쓴 책인 <스펙터를 생각한다>에 나오는 지시사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저서 중에는 제 3자인 작가가 쓴 평전인 「윌 스펙터, 미래의 설계자」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이미지와 다른 그의 삶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트리비아

  • 개와 같은 동물들을 좋아하여 가온시 펜트하우스에서 기르던 개를 총리가 된 후 울샘관까지 데려왔다고.
  • 대표적인 자동차 매니아이다. 롤스로이스 모터스와 엣슬라라는 자동차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고, 자동차 수집과 운전도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은 서킷을 전세 내고 레이서에게 교습 받아가며 드라이빙을 배운다고 한다. 부가티 타입을 비롯한 클래식 카들은 물론 고급 세단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슈퍼카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2015년 조사 결과 26억원짜리 부가티 베이론 포함 총 126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고, 차량 가격을 다 합치면 총 477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게 1억원 이상 차량만 조사한 거라서 1억원 이하의 저렴한 차량은 누락되었다는게 함정. 관련기사 에피소드로 외제차를 구매하다 영업사원에게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 포르쉐를 구입하려 매장을 방문한 윌리엄 스펙터, 포르쉐를 총 6대 고르고 계약사인을 하고 가는 스펙터를 포르쉐 신입직원이 몰라보고 계약금을 달라며 발목을 붙잡은 일이 있었다, 이에 스펙터는 지갑가져와라 하면서 3억을 즉납했다는 일화도 있다. 벤틀리 매장서는 벤틀리를 고르는데 역시나 스펙터를 몰라본 직원이 차를 리스로 하면 좋다는 조언을 해주고 직원은 신원조회를 위해 스펙터의 정보를 스펙터 뱅크 서비스에 의뢰했다는 웃긴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계약금은 구매자가 돈이 있냐 없냐를 떠나서 앞으로 구매절차에 대한 담보적 성격이기 때문에 받는 게 옳다. 예를 들면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차를 구매하기로 해서 영업사원이 이런저런 절차를 다 거쳐놨는데 갑자기 안 산다고 하면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손해기 때문에 그런 경우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받아두는 것이다.
  • 회사일 외에 대중매체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편이었다. 주로 본사 사옥과 아예 붙어있는 가온시 펜트하우스에서 집무를 보며 은둔과 칩거 등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또 국제적 기업의 회장답게(?) 3~4개월간 일본, 미국, 서유럽 등으로 국외 출장도 잦았으며 심장까지 좋지 않아 요양 겸 나르샤 같은 곳으로도 오래 나갔다. 총리직에 오른 이후로는 언론과 자주 접촉하는 편.
  • 계열 분리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도 동생 다니엘 스펙터가 새로이 그룹을 세우려하자 재정지원을 끊어버릴 것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한 적이 있다.
  • 상당한 애연가이다.
    2010년 영국에서 시가를 태우며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일반적인 궐련을 피우는 모습보다는 시가를 피우는 모습이 더 자주 목격되곤 한다. 예비 사위 토마스 언더우드 주니어와 자주 시가를 태우며 체스를 두곤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