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베이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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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東北直轄市
일본어: 東北直轄市
루마니아어: Municipalitatea de Dongbei
폴란드어: Miasto Gmina Dongbei
슬로베니아어: Občina Dongbei
헝가리어: Dongbei önkormányzata
크로아티아어: Općina Dongbei
프랑스어: La municipalité de Dongbei
이탈리아어: Il comune di Dongbei
포르투갈어: O município de Dongbei
스페인어: El municipio de Dongbei
둥베이직할시
백일황원선기(白日黄圜線旗).jpg
국기
국가 둥베이시민의 노래
수도 중정 구
정치
공용어 중국어, 루마니아어, 일본어, 폴란드어, 슬로베니아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에스파냐어
국민어 한국어?
지역어 대만민남어, 하카어, 광둥어, 대만 원주민 언어들
정부 형태 공화국, 다당제 민주주의
시장 안징후이
부시장 나카소네 미하이
역사
정부수립  
 • 독립 1988년 1월 3일
 • 광명공회 간섭 이탈 2017년 3월 9일
 • 5차 개헌 2017년 4월 15일
지리
면적 5,794 km2 (157위)
시간대 DBST (UTC+8)
인구
2017년 어림 16,318,639명
경제
 • 일인당 76,320$
HDI 0.913 2017년 조사)
통화 둥베이 파운드 ()
기타
ISO 3166-1 DB, DBI
도메인 .db, .東北
국제 전화 +8568

둥베이직할시는 대만의 동북쪽(정확히는 대만 이란현의 동쪽과 신베이시의 동남쪽)과 남랑민국, 일본 오키나와현 난세이 제도의 서남쪽에 있는 국가이다. 도시국가이다.

역사

16세기 이전의 둥베이직할시의 역사에는 구석기시대에 대만섬보다 늦은 시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 《삼국지(三國志)》에서 오(吳)나라가 종종 이주(夷洲)(현재의 중화민국 대만성, 둥베이 직할시 서남부)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하며, 《수서(隋書)》에는 "유구국(현재의 오키나와 현 또는 현재의 중화민국 대만성 또는 현 둥베이 직할시)은 바다 가운데 있는데, 젠안(建安)군(현재의 푸젠성(福建省))의 동쪽이며, 배로 5일을 가야 이른다." 라 하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590년에는,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포르투갈인들이 타이완 섬에 내렸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그 때, 포르투갈 선원들이 초록으로 덮인 타이완 섬을 보고 "포르투갈어: Ilha Formosa"("아름다운 섬"이란 뜻)라고 서양식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타이완 성을 "포르모사"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때 둥베이직할시의 옛 지명인 "영성주"가 알려졌다. 그래서 지금도 서구에서는 둥베이를 영성(赢城)을 음차한 "뷰티풀 캐슬"이라고도 가끔씩 불리고는 한다.

그 뒤 16세기에는 아무런 기록 없이 타이완 섬에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原主民)들이 섬 전역에 널리 분포하여 거주하였으며, 한족 이주민은 거의 없었다고 하고, 둥베이직할시에서도 대만섬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지만, 한족 인구의 폭증으로 당시 면적의 10%는 이미 한족 국가가 들어섰으나, 17세기 명나라 대(明代) 말부터 유럽 상인들이 앞다투어 타이완으로 찾아 들어오면서 한족(漢族)들의 타이완 이주도 시작되었다. 여기서 본성인이라는 중국인 중의 민족 집단이 탄생하는데, 이때 둥베이 지역도 한족이 반을 넘어갔다. 1624년, 펑후 제도를 점거하던 네덜란드(和蘭) 상인과 명(明)나라 군대는 네덜란드이 동인도회사가 펑후 제도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타이완 섬의 서남부(현재의 중화민국의 타이난 시 일대)에 상업지구를 건립하는 데에 합의하였고, 그 지역 말고도 둥베이 지역에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생겼다. 이후, 1626년~1642년에는 에스파냐인들이 타이완 섬에 들어와 타이완 섬 북부의 지룽(鷄龍, 훗날 한자명 基隆)과 서랴오섬(社寮島, 사료도, 현재의 허핑(和平) 섬 일대)를 차지하고, 산살바도르 성을 세웠다. 에스파냐는 이후에 점령지를 하쯔난(蛤仔難, 합자난. 현재의 중화민국의 이란(宜蘭) 현), 후웨이(현재의 중화민국의 신베이 시의 단수이 구) 까지 넓혔고 이 지역에 산토도밍고 성을 세웠으며, 이때 똑같이 둥베이 지역에도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생겼다.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타이완 섬과 둥베이 지역의 일부에 진출한 네덜란드 세력과 에스파냐 세력 사이의 경쟁과 알력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1642년, 네덜란드인들은 에스파냐의 타이완 내 점령지를 공격하여 빼앗고 에스파냐인들을 타이완 밖으로 몰아냈고, 이때 당시 네덜란드가 타이완 섬과 둥베이 지역의 일부를 점령해 식민지배한 목적은 중국, 한국,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무역우세를 점하고, 타이완 섬과 둥베이 지역의 일부에 있는 식민지를 거점으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동아시아 지역 전역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로 말미암아, 1624년부터 1662년까지 네덜란드의 타이완 섬 및 둥베이 지역 일부 통치는 정성공(鄭成功)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 1661년에 정성공은 타이완 섬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을 공격하였고, 1662.2.1에 정성공은 네덜란드 세력의 항복을 받아냈다. 네덜란드인들로부터 타이완 섬에서의 철수와 타이완 섬의 모든 권리 이양을 약속받은 정성공은 타이완 섬 역사상 최초로 한족 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위들의 일로 인해 둥베이 지역의 당시 면적의 78.5%가 정씨왕국 손에 들어갔다.


그 뒤인 1662.2.1 이후로 정성공은 타이완을 청나라에 대항하는 거점으로 삼아 통치할 목적으로 명경(明京)을 세워 동도(중국어 간체자로 东都, 중국어 정체자로 東都, '동쪽의 수도')라 칭하고, 펑후 제도를 포함한 타이완의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자기 휘하의 군인들과 함께 타이완으로 온 푸젠 성 주민들을 섬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중국 본토를 수복하고 필리핀에서 에스파냐인을 몰아내어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662.6.23에 정성공이 병으로 급사하였다. 그 후 그의 아들 정경이 그 뒤를 이었으며, 1664년에 정경은 동도를 동녕이라고 개명하여 동녕왕국의 왕으로 등극하였고, 정성공의 반청(反清) 유지를 받들어 대륙에서 일어나는 복명운동에 가담하였다. 특히 삼번의 난(三藩之亂)에 적극 동조하여 한때 푸젠 성의 일부를 공격하여 장악하기도 했으나, 결국 1683년에 정경이 죽으면서 정씨 정권이 정성공의 손자에게 넘어가면서 내부분열이 일어났고, 청 정부는 뇌물을 이용해 이러한 내부분열을 심화시켰다. 결국, 정성공으로부터 시작한 정씨 일가의 3대(代)에 이은 타이완 통치는 21년 만에 청나라 군대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21년동안 이어진 정씨왕국의 통치시기 당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정씨 정권과 상업협정을 맺으려 했는데, 당시 영국인들은 동녕왕국을 타이완 정씨왕국(台灣鄭氏王國)또는 명경왕국(明京王國)이라 칭하였다.


한편, 1640년에 세워진 대두 왕국(중국어 간체자로 大?王?) (평포족(平?族) 중 파포라족(巴布拉族), 바브자족(?霧?族), 파제흐족(巴則海族), 호아냐족(洪雅族)이 16세기 중엽(1540년대)에 세운 과족군집왕국(跨族群準王國)으로 모든 부락의 대표로써 대두번왕(大?番王)을 선출했다. 이 부족연맹의 국가는 청나라 옹정제 대까지 이어가다 1732년에 사라지게 된다.)가 본격적으로 대만 서부를 넘어 영토를 넓혔는데, 전성기 때는 둥베이의 정씨왕국 점령지가 아닌 지역의 60%를 차지했다.


그 뒤 청나라 푸젠성의 일부로 존속하다가 여러번의 전쟁서 진 청나라에서 1683년(1732년)부터 푸젠성 관할이었던 둥베이 지역과 타이완 섬과 그 부속도서를 지키려고, 1887년에 타이완 성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895년, 동학농민운동의 결과로 벌어진 청일전쟁의 결과인 시모노세키(下關)조약으로 인해 타이완 성 일대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 뒤 행정구역이 종전의 것이 유지되다가, 1915.9.1에 둥베이 지역이 다이호쿠 부(臺北府) 산하의 도호쿠 시(東北市)로 승격하였다. 이때 작명 이유가 대만의 동북에 있다나 뭐라나(...) 그 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 등을 경험한 둥베이는 연합국 간의 협의에 따라 1945.10.23일에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항복으로 중화민국이 둥베이의 반을 가져갔다. 그 후 직할시로 승격한 것은 가오슝의 직할시 승격 3년 후인 1982년이다. 1982년 당시 대만측 영토의 인구는 124만, 일본측 영토의 인구는 72만이었다.


그러나 본래는 대만과 역사적 궤적을 같이 했던 하나의 도시를 1945년 이후 일본과 중화민국(대만)이 반띵하여 지배한 것이었고, 이의 원인은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의 결과로 인한 것이었다. 그거 가지고 하나의 도시가 둘로 갈린 것에다가, 그 뒤에도 일본 지배 지역이었던 땅과 대만 지배 지역이었던 땅이 유대감을 느끼며 하나의 도시로 기능하고 있었기에, 이를 알고 있던 장징궈 당시 중화민국 총통과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일본 총리가 비밀 회담을 통한 독립 보장 약속을 통해, 1988.1.3에 故 장징궈 前 중화민국 총통(President)과 故 다케시타 노보루 前 일본 총리의 공동 선언으로 일본령의 반과 대만령의 반이 서로 붙어 둥베이직할시로 독립하였다.


그 뒤 2014.10.1에 둥베이 직할시 인구는 1천만을 돌파하였다. 하지만 그 후 2015년경부터 광명공회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다. [1] 그 결과로 2015.1.1에 명칭을 중화민국 소속 시절 공식명칭의 계승적 명칭인 둥베이 직할시에서 동북광역시로 변경하였으나,[2] 그 이후 반명학 운동의 심화로 rupert2005에게 광명공회가 넘어가자, 광명공회의 간섭이 약해졌고, 2017.3.9.에 동북광역시로 명칭을 변경했던 것이 광명공회의 강압으로 드러나서, 둥베이광역시로 변경함을 거쳐, 둥베이직할시로 명칭을 환원하였다.[3]

그 이후 광명공회 간섭 이탈을 통한 침탈주권 회복에 성공하며, 2017.4.15에 5차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시의회 표결 통과, 하지만 반대 측의 약점 폭로로 헌법 개정안 시행은 유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헌법 56조 개정에만 해당된다.(...)

문화

전통문화와 대중문화

일본과 대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역사로 인해 전통문화에서는 그 둘의 전통문화가 혼재되어 나타나거나 퓨전된 문화가 나타난다. 대중문화에서는 이런 역사 속에서 J-POP과 대만 대중음악, 일본과 대만의 대중문화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며, 서브컬쳐가 강세를 나타낸다. 0.2%를 차지하는 한국계와 그 외 소수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한류가 영향을 끼친다.

언론

중화권과 일본의 신문의 진출이 1880년대부터 지금까지 빈번하게 존재하고 있다. 특히 방송은 자체 지상파 방송국이 없능 관계로 각 민족이나 국가의 방송을 중계국 형식으로 세워서 하던 것을 2014년에 합동송신소를 세워 송신하다가 2016년 즈음에 둥베이직할시 공영방송이 개국하였다. 물론 지금도 외국 지상파 방송을 그 합동송신소에서 국외 지상파 송신소 형식으로 송신하고 있긴 하다.

다문화에 기초한 도시문화

본래 1989년~1990년까지의 둥베이직할시에는 극소수의 대만 원주민과 2개의 다수 집단인 중국계 대만인과 일본인만이 거주했다. 하지만 둥베이직할시가 독립한지 1~2년인 신생국의 길 위에 있던 1989년~1990년, 동유럽에서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자 마자 민주혁명이 일고, 제일 먼저 루마니아인이 둥베이로 망명 및 이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이후 1990년 즈음부터 구유고연방에서 벌어지는 민족갈등으로 인하여 슬로베니아는 단기 내전 후 독립 유보기간을 거쳐 독립하고, 그 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독립 직후 장기 내전이 일어나자, 전쟁터지자 극소수의 크로아티아인과 슬로베니아인과 보스니아인들이 망명 및 이민하였다. 그들의 베이비붐으로 인해 위 민족들의 집계자 수가 늘어났으며, 당연히 집단의 규모 또한 증가했고, 그들의 친척들이 속속들이 둥베이로 들어왔다. 또한, 폴란드인들의 취업과 생존을 위한 이민행렬 이후, 헝가리인들도 폴란드인과 똑같은 이유로 이민행렬을 이뤘다. 지금도 외국인 유입이 잦다. 그로 인한 다문화사회 급속 진입 속에서도 대만 원주민 문화의 재부흥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서 둥베이직할시는 국제도시가 되어 다문화에 기초하여 도시 문화를 일구었는데, 수많은 전통문화와 대중문화가 6천 제곱킬로미터 남짓한 도시국가에 펼쳐지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둥베이다문화축제를 10월 중순 즈음에 연다. 이 축제는 가끔씩 대한민국의 이태원지구촌축제와 연계되기도 한다.(물론 가상의 설정이다. 실제로 알아들으면 제이위키 대문 안내에 나온 것처럼 심히 골룸하다.(...))

정치

일본과 대만의 정당들이 독립하면서 냅둔 지당 형태로 존재하며, 그 외의 정당으로는 독자정당은 농민당, 녹색당이 존재한다. 이들이 둥베이직할시 정국을 주도하는데, 예외적으로 농민당은 둥베이-미국 FTA 반대운동을 이끌면서 창당되어 정국을 이끄는 주요 정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2017년 5월 이후로 대만과 일본의 본당과 지당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어 "개천절 지방선거" 이후에 본당-지당 관계 단절 후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합당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경제

동북아의 남서방에 횡꽁[4]이 있다면, 동북아의 남동방에는 동팍[5]이 있다.

시민들이 전형적인 국제도시 특성을 이용해 둥베이직할시가 가상국가와 현실국가간, 현실국가와 가상도시 간의 민간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금융 허브이자, 공업의 중심기지가 되어 수많은 돈을 벌고 있는 구조를 형성케 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고도경제성장의 결과로 동아시아에서 국가 단위로는 범접해보지 못한 국민소득 5만불, 6만불, 7만불을 제일 먼저 달성한 곳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하거나 회담, 세미나, 컨퍼런스, 전람회, 박람회 등을 관광과 연계시키는 MICE 산업, 첨단 하이테크 제조업과 오폐수 및 공해 정화장치가 잘 되어있는 친환경적인 중화학공업및 친환경적인 경공업 등이 주력 산업이며, 최근에는 간척사업도 주력 사업으로 진입하고 있다.

군사

2차대전에서나 볼 법한(...) 헤비탱크(중전차)를 만들어 굴리는 국가 중 하나이다. 병력은 보병 66000명, 대포 11000대(대포당 1명)(11000명 병사), 장갑차 22000대(장갑차당 4명)(88000명 병사), 전차(탱크) 44000대(전차(탱크)당 6명)(264000명 병사), 중전차(헤비탱크) 22000대(중전차(헤비탱크)당 6명)(132000명 병사), 순양함 1000대(1대당 800명)(800000명 병사), 일반전투기 1000대(1대당 2명)(20000명 병사)으로, 병사로 환산 시 총 138만 1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둥베이직할시 시정규군에 소속되어 있다.

주해

  1. 이것은 꽤나 부당한데, 그 이윤는 특수가상도시는 엄연한 주권 가상국가로 간주되는데도 한국가상도시나 특수가상도시나 다 같은 가상도시라는 이유로 자기 뭣대로 관리를 빙자한 식민화를 시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2. 2017년 3월 9일 대목에서 보듯이, 그 날 동북광역시로 명칭을 변경했던 것이 광명공회의 강압으로 드러나서, 둥베이광역시로 변경함을 거쳐, 둥베이 직할시로 명칭을 환원하게 되는데, 이를 광명공회 게이트라 칭한다.
  3. 둥베이광역시로 변경함을 거쳐, 둥베이 직할시로 명칭을 환원했던 이유는, 순전히 오탈자 한 자 차이였다(...) 광명공회 시스템이 그랬다. 그래서 침탈 주권을 회복하고 세든 활동공간을 이사할 독립적 활동공간이 필요함을 빨리 느꼈다고(...) 한다.
  4. 홍콩을 광둥어로 이르는 이름
  5. 둥베이를 대만민남어로 이르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