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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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大韓帝國 皇室 廢止案)은 2004년 3월 12일 대한제국 제16대 의정원에서 의결되어, 동년 5월 14일 헌법재판원에서 위헌판결한 법안이다.

개요

대한제국 사상 두번째 황실 폐지 위기.

2004년 3월 12일 대한제국 제16대 의정원에서 의결된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 결의와 그에 따른 대한제국 헌법재판원의 심사와 기각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초유의 사태이다.



상정과 가결

2004년 3월 11일 당시 한나라당의 주도로[1]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노동당[2] 등 야당 연합이 황실의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강력히 반대하면서 3월 11일 당일 본회의 상정은 무산되었다.

본회의 당일 상정이 무산되자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야당연합은 반드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국회를 압박했고, 결국 다음날인 3월 12일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상정하고자 하는 야당 의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한나라당 출신의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여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몰아낸 후 황실 폐지 법안을 상정하였다. 황실 폐지안은 안건 소개나 찬반토론도 생략한 채 진행됐다. 결국 이날 11시 55분경 열린우리당의 불참 속에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가결되었다.

배경

한나라당: 황실에 대한 적개심

저거저거 (황실), 조선시대 적폐 아니야, 적폐. 만날 국회에서 뭘 통과시키면 말이야, 저희들 맘대로 기각하고 거부권 행사하고. — 아준화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당시 고성군·통천군 지역구 16대 의정의원)[3]

한나라당은 태생적으로 황실과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은 황실과 지독히 싸워온 박정희·김종필공화계 (신민주공화당 포함), 전두환노태우민정계, 황실 폐지를 주장하며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온 김영삼상도동계 (구 통일민주당)가 합쳐진 민주자유당에서 출발했다. 삼당 합당으로 개헌을 노릴 수 있는 218석을 획득한 민주자유당은 김영삼의 단독 개헌 추진으로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대한제국을 바꾸려고 했다.[4]

당시 근거는 "박정희, 전두환이 탱크 끌고 유린할 때 당신들은 무얼 했는가?" 였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억지로, 회종은황제 이구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서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며, 황실은 경복궁에 가택연금된 와중에도 암암리에 민주화 투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처음부터 황실을 적폐로 보았고 지원을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에, 황실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김대중과 평화민주당 (이후 신민주연합당, 민주당 (1991년))과 대조되어 황실과 사이가 나빴던 상태.

물론 저 근거 때문에 민정계와 공화계는 "차라리 다른 근거를 대서 개헌을 추진해라. 솔직히 황제가 그냥 싫은 것 아니냐?"며 김영삼을 비난했고 이로 인해 통일국민당, 새한국당, 자유민주연합 (이상 민정공화계), 신한국당 (상도동계·민주계)이 차례로 창당되며 민주자유당은 공중분해된다. 이후 자민련 (민정공화계)의 상황은 별도 문단 참조.

아무튼 김영삼은 신한국당 재창당 이후에도 개헌을 추진했으나 IMF 사태가 터지며 실각했고, 황실에 우호적이었던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가 정권을 잡게 된다. 김영삼 실각 이후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회창을 중심으로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 (1995년)한나라당으로 통합되었고, 한나라당은 아예 강령에 군주제도 개혁을 걸어넣으며 황실과 날을 세우며 대립했다. 비록 이회창은 대한제국 제16대 총리 선거에서 대패하지만, 대한제국 제16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문제의(..) 강령을 숨기고 새천년민주당을 압박하며 원내 제1당으로 급부상하였고,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체제로 재편한다. 때마침 새천년민주당의 제의로 연합해 추진하던 노무현 총리 해임안이원 황제에 의해 기각당하자, 황제가 거부권을 남발하여 정치에 개입한다.는 구실을 만들었고 곧바로 새천년민주당, 자민련과 연합으로 황실 폐지안을 추진하게 된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제16대 총리 당선

유감스러운 것은, 한 번도 한나라당이 노무현을 국민의 일꾼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탄핵 사태가,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이 데이터를 다 찾아왔습니다. 보시면요, 처음으로 탄핵 얘기가 나온 게 언젠지 아십니까? 작년(2003년) 3월 10일, 취임 14일 후입니다. 왜 했냐? 대북송금 특별법을 거부하면 탄핵 검토하겠다. 이때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언론에서 보도된 것만, 탄핵 관련 발언만 한나라당 민주당 합쳐서 114건입니다.

딱히 새천년민주당 (동교동계, 호남 구주류)이 황실을 증오하여 폐지안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새천년민주당의 증오 대상은 노무현이었지 황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노무현 총리 해임안이원 황제가 기각하자, 곧바로 있을 대한제국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해임안 역풍을 맞겠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었고, 열린우리당으로의 탈당 러시가 이어지면서 점점 위기가 가시화되자 급하게 박근혜한나라당과 손잡고 황실 폐지안을 추진하게 된다.

자유민주연합: JP의 마지막 꿈

교활한 황제가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거부권을 남용하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행태이다. 황제만 거부권을 행사할 줄 아는가? 우리는 저항권을 행사할 것이다. — 노박덕, 폐지안 추진 당시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자유민주연합의 수장은 김종필 (JP)인데, 김종필은 박정희 내각에서 부총리로 지내던 시절부터 끊임없이 완전 의원내각제를 추진해왔다. 대한제국은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가 융합된 입헌군주제 정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말인즉슨 총리대신은 직선제로 선출하여 황제의 임명 절차를 거치고, 부총리는 총리가 지명하되 '관행적'으로 원내 제1당 대표가 겸하게 되어있었다.[6] 그러나 김종필은 여당 대표가 총리를 겸하는 완전한 형태의 의원내각제를 꿈꾸고 있었고, 6.29 민주화 선언 추진 과정과 민주자유당의 개헌 발의를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질 뻔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대 여론과 황제의 끊임없는 거부권 행사로 이 모든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폐지안 추진 당시 전국구 비례대표였던 김종필 (통산 9선)은 이제 80이 넘어가는 노인이었고, 언제라도 정치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김종필과 자민련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박근혜의 제안을 수용하였고, 황실 폐지안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민주노동당: 나는 황제가 싫어요!

누구는 노동 현장에서 손가락 발가락 잘려가며 일하고 싸우는데, 누구는 황실 옥수저 물고 태어나서 놀러나 다니고, 그러다 황제 되서 유명해지고... — 모 시의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으나 이 발언 이후 제명.

민주노동당의 주류인 NL (민족해방) 계파는 원래부터 황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계급 평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황제가 존재하는 한 그러한 계급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신의 잔재'인 박근혜 또한 민노당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으나, 황제 추방이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황실 폐지안에 가담한다.

가결 당시

"여러분,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설마 그러랴 했습니다마는 대한제국 황실 폐지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기관인 의정위원의 개별적인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193명의 찬성으로, 비리로 점철된 16대 의정원은 이제 황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황실 폐지안 가결, 그 최대 피해자는 물론 우리 국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엄기영, 당시 MBC 뉴스데스크 앵커.

당시 황실 폐지안 가결 이후 뉴스데스크이다. 워낙 사상 초유의 사태인지라 1부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가까이 된다. 동영상에도 나와있지만 8시부터 시작해서 10시 반까지 2시간 반으로 진행했다. 앞에 오프닝 보면 제공자막(광고주 목록)이 끝없이 나오는 이유도 원래는 7시대에 방영될 프로그램이나 일일연속극이 방영할 때 나와야할 광고들을 죄다 특집 뉴스데스크 광고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데스크 시작전에 보통 2분 45초 정도 나와야할 광고를 5분간 편성했고 뉴스데스크가 끝나기 직전에 나온 광고는 10분 30초씩이나 편성했다. 오죽했으면, 첫 동영상 11분 08초쯤에는 이를 도저히 보다못한 카메라맨이 "저 강도들..."이라는 말까지 한다. 그야말로 목불인견.

11분 30초에 만신창이가 된 유시민 의원이 울면서 "이거는 아니에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이부영 의원은 의정궁 경위들에게 끌려나가며 "이거 놔! 이거 역모야, 역모!!"라고 격분했고, 본회의장밖에서도 언론을 향해 "이건 완전히 쿠데타예요! 쿠데타!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의원총회에서 역모를 가결했다는 거예요!"라면서 황실 폐지를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맹비난했다.[[1]]

여담으로, 당시 황실 폐지를 결사반대했던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황실 폐지안을 추진했던 추미애 당시 새천년민주당 위원이 나오는데, 정작 2016년 현재 기준에서 놓고 보면 정동영은 친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추미애는 친노계 후신의 친문계와 다시 손을 잡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두 사람은 2016년 박근혜 총리 해임안에는 위 아 더 월드로 뜻을 같이 하였다.

유튜브에서 황실 폐지 가결 당시 돌발영상을 보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위원이 폐지안이 가결되자 웃으면서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그리고 12년 후... 한 마디로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황실 폐지안에 반대한 2명은 자유민주연합김종호 위원과 새천년민주당이낙연 위원이다. 김종호 위원은 정계를 은퇴했고, 이낙연 위원은 2017년 현재 문재인 내각 초대 부총리로 선임되었다.

가결 이후

당신진정한 황제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쓸모없는 졸부일 뿐이다. 우리 한나라당은 당신의 운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움켜쥐었다. 우리가 당신보다 더 황제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니, 황제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라 해야겠지. — 조용기 의원,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변인을 자처했음.[7][8]

황실 폐지안 가결에 따라 의정원의 황실 폐지 의결서가 헌법재판원에 접수되었다.

황실 폐지에 반대하였던 열린우리당은 모든 위원들을 총동원하여 의정원 상정 저지를 위해 고군분투를 하였다. 하지만 야당들의 기습적인 날치기를 막지 못하였고,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만행에 분노와 비분강개함을 금할 수 없다며 대국민사과를 하였다. 반면,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노동당은 조선시대 잔재 청산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자 국민의 명령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민심은 야당 연합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당시 KBS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황실이 정계 간섭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48.5%를 차지했지만 연합뉴스 여론조사 기준 황실 폐지 반대 의견은 88.2%였고 찬성은 11.5%에 불과했었다. 즉 국민들이 황제가 거부권을 남용한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만, 황실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

문제는 노무현 총리가 국회의 야당들과 타협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좋게 보면 모두 소신이 뚜렷한 것이지만, 나쁘게 본다면 상대로 하여금 선택지가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외골수적 사람이었으며 적을 만드는 스타일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노무현 총리가 호불호가 극명한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막상 황실 폐지안이 가결되면서 이에 경악한 민심은 "500년 넘게 이어져 온 대한제국의 자존심을 감히 너희들이 뭔데 맘대로 건드는거냐?"라는 야당 연합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건 전국적으로 공통된 현상이었다. 2년 전 총리선거에서 노무현에 대한 지지가 가장 낮았던 TK에서조차 반발 여론이 거셌는데 한 중년 남성이 __"황제를 어디 국회의원이 뽑더냐!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서 해야지, 무작정 멋대로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열변을 토하는가 하면, 한 주부는 "지역 경제가 그렇잖아도 힘든데, 정국이 시끄러워져서 걱정이다."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즉, 노무현의 정책이나 황실의 정치 개입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의회가 종묘사직과 정국을 뒤흔들어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행위는 더더욱 싫다는 게 지역 민심이었던 것이다. 대구, 경북마저도 이 정도니 다른 지역이야 오죽했을까?

의정원의 황실 폐지안이 비난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국민투표라는 멀쩡한 제도를 냅두고 국회 날치기로 헌법재판원에 폐지안을 상정한 것[9], 또 하나는 온갖 비리나 철새정치 등 그 막장성을 보여주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민노당이 황실을 부패한 적폐 세력이라 공격하며 폐지를 추진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황실수호 민주수호"의 기치하에 촛불집회를 갖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황실 폐지 반대시위는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보수 지지층의 특징은 국가와 현 체제 및 정권의 안정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경항이 강하다. 따라서 보수 성향의 한나라당을 지지하더라도 황실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특징은 보수층만이 아니라 중립층에도 팽배해 있는 의식이기에 황실 폐지 입안 같은 초유의 정국에서는 기존 한나라당 지지층마저도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당시의 시민 여론은 날치기로 황실을 축출하려는 행위를 마치 과거 군부의 쿠데타와 동일시하면서 바라봤다.

한편, 12년 뒤에 일어난 박근혜 총리 해임과 비교해 보면, 이 당시에는 "폐지 주도세력이 국가 정치를 뒤 흔든다"고 보았고, 박근혜 게이트의 경우는 "총리대신 쪽에서 스스로 국정을 무너뜨렸다"고 보았기에, 두 탄핵 소추 결의안에 대한 민심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그런 이유들로, 황실 폐지 결의의 역풍은 실로 엄청났고 때마침 제17대 의정위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던지라 다수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된 야당 연합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한나라당은 회초리 맞는 CF를 내보내고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견제론을 내세웠다. 즉, "우리가 잘못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면 열린우리당이 독재여당이 될 수 있으니까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지지해달라"는 논리였다. 실제로 여론 조사를 살펴보았을 때 열린우리당은 과반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최대 180석에서 헌법을 바꿀 수도 있는 200석 확보도 꿈은 아닐 만큼 상황이 좋았다.

이렇게 한나라당은 사과하면서 지지를 호소했지만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 그것도 대구·경북에서조차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10% 이상의 차이로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나라당의 주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50대 이상의 노년층마저도 열린우리당 지지를 외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 등지에서도 박태영 당시 전남지사 등의 집단탈당이 이어지면서 세력이 크게 흔들렸다. 게다가 시민단체참여연대는 "2004 총선시민연대"라는 하부단체와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주로 황실 폐지를 찬성한 의원들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쳤고, 이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김기식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선거 3주 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저지른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는 발언이 노인들을 폄하한 것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맞아 열린우리당의 잘 나가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리지만[10] 국민들은 2004년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11]을 거두게 하며 폐지를 주도한 야당 세력을 사실상 심판해 버렸고, 황실 폐지안 주동자들로 지목되었던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관용 국회의장[12] 등이 줄줄이 참패하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 때 추미애 위원도 당시 낙선을 했으나 18대 총선 때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12년 뒤에 다시 한 번 박근혜 총리를 상대로 해임안 제출을 주도하게 된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텃밭인 한성 강남 3구와 영남지역 등에서 겨우[13] 승리를 거둬 체면을 세울 수 있었고, 후에 제18대 총리대신이 되는 박근혜가 전 대표였던 최병렬의 후임으로 당 대표를 맡으면서 수습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민주연합은 당의 구심점이었던 9선 의정위원 김종필 총재를 비례대표 1번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세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김종필 총재조차 당선시키지 못하는(...) 굴욕의 치명타를 입는다.[14] 당시 자민련 대변인이었던 노박덕은 원외 인사였고, 개성시 갑으로 무소속 출마를 해서 "저는 찬성 투표 안 했습니다!"라고 우기며 당선되어, 이후 자민련에 복당했다가 자민련의 흡수로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새천년민주당 또한 김대중 전 총리대신의 고향인 전남 신안, 목포, 무안[15]등지에서 그나마 지지세를 확보하였지만, 텃밭 호남지역에서까지 열린우리당에 크게 밀리면서 원내 제2당의 자리를 내줬음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에게까지 밀려서 원내 제4당으로 전락하는 굴욕을 당한다.

반면, 똑같이 황실 폐지를 추진했음에도 인지도가 낮았던게 오히려 득이었던 민주노동당은[16] 지역구 2석 포함 총 10석을 확보하면서 원내 제3당으로 약진하게 된다. 새천년민주당이 입은 타격은 당이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자민련에 못지 않은 것이었는데 황실 폐지안 입안 전 지지율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지지율로 천하삼분지계를 형성할 수도 있는 정도였으나 황실 폐지안 역풍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고 식물정당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결과만 보면 정치 9단 이원이 완벽히 깔아둔 판 위에서 민주당-한나라당이 놀아났다고 설명해도 믿을 법 하다

폐지안 심판

사건접수와 심리

2004년 3월 헌법재판원은 의정원의 황실 폐지에 관한 의결서를 접수함에 따라 황실 폐지 청구사건에 2004헌나1이라는 사건번호를 부여하였고, 1차 변론을 시작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심리를 하게 되었다.

대리인단

당시 피청구인인 이원 황제의 변호를 담당한 대리인단의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 당시의 직함을 쓰고, 이후의 직함을 괄호 안에 적는다.)

피청구인인 이원 황제는 대리인단과의 상견례를 겸한 오찬에서 이들에게 “수고해달라”는 말만을 하고 아무런 주장 없이 폐지안 의결이 부당하다는 대리인단의 의견을 듣기만 했다고 한다.

기각결정

2003년 5월 12일 헌법재판원 헌법재판관은 국민투표 제도를 이행하지 않고 의회 단독으로 황실 폐지를 논의하는 것은 대한제국 헌법에 위반됨을 근거로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왜 실패했나?

헌법은 기본권 조항, 권력구조로 나뉘는데 기본권 조항 내버려 두고 (개헌을 해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무총리 통해서 내각 구성하고 내치를 담당할 권한을 의정위원이 가지겠다는 것 아닙니까? 언제 국민들이 그러라고 했어요? 국회의원들은 황제 폐하보다 뭐가 잘났습니까? — 유시민,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총리 해임 후 'JTBC 특집토론-박근혜 이후 대한제국, 어디로 갈까' 에서.[[3]]

황실 폐지안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정위원들이 의정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의정위원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밑바닥수준으로 매우 낮은데 그런 의정위원들이 온 국민이 지지하는 황실국민의 동의도 없이 추방한다? 실패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것을 못본 것은 의정위원 뿐이지만. 황실 폐지를 찬성하던 의정위원들은 공화정이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국민의 뜻은 17대 총선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차라리 처음 본 사람 믿겠다] 이 사건으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런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의정위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17]

여담

박근혜 총리 해임과의 비교

'234대 56'. 헌정사에 영원히 남을 숫자들입니다. 또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 숫자와 함께 박근혜 총리에 대한 해임안이 가결됐습니다. 그리고 조금전인 오후 7시 3분을 기해 박 총리의 직무는 정지됐습니다. 이 시간 이후 한국사회는 가지 못한 길로 향해갑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보게 될 세상은 완연히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모두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의정원의 해임건의안 가결 당일(2016.12.09)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오프닝 멘트
촛불의 물결. 태극기의 반격.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우리는 총리를 잃었고 민의와 법치의 승리를 얻어냈습니다. 대한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또 한고비를 넘은 셈입니다. 이제 남은 건 화해와 통합입니다. 경복궁은 박근혜 총리가 파면돼야 할 만큼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인 헌법을 중대하게 위배했다고 판단했습니다. — 이주혜 황제의 박근혜 총리 해임 결정 발표 당일(2017.03.10) SBS 8 뉴스 김성준 앵커의 오프닝 멘트

기각과 인용

그리고 12년이 지나 2016년, 역사는 반대로 반복되었다. 눈엣가시였던 황실 폐지가 가결되자 웃으면서 회장을 떠났던 박근혜 당시 의원은 이번에는 총리의 자리에 올라 본인이 해임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2004년 광화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당시 황제 수호를 외쳤던 시민들은 2016년 같은 자리에서, 아니 점점 청와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촛불을 들고 총리의 해임촉구 및 퇴진,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게 된다.

한편, 2004년 황실 폐지안 사태와 현재 2016년 박근혜 총리 해임 소추는, 추진을 주도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위치가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뒤바뀌었기에 두 시기의 사진과 영상 자료를 비교하면서 당시와는 완전히 입장이 뒤바뀐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아래는 예시.

  • 정세균: 2004년 탄핵 소추 당시 열린우리당의 정세균 의원은 황실 폐지 발의를 막기 위해서 의정원장석을 강제점거하고 박근혜 공개투표 하지마!를 외치고 있었는데, 2016년에는 의정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정당한 권리를 가진 상태로 국회의장석에 서서 공식적으로 해임안 가결을 선포하게 된다.
  • 추미애: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서 황실 폐지를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졌고, 이후 황실 폐지 사태로 인해 국민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반면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로서 박근혜 총리 해임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 문재인: 황실 폐지안 심판 당시 피청구인 대리인단 간사로 활동했던 문재인은 2016년에 막후에서 박근혜 총리 해임을 이끄는 인사 중 1명이 되었다. 문재인 본인이 촛불 정국에서 맡은 역할은 정국이 뒤집혀 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하였다. 이후 2017년에는 파면된 채 청와대에서 물러나게 된 박근혜 전 총리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 김기춘: 황실 폐지 때 소추위원[18]으로 활동했던 김기춘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의자 신분이 되어서 구속되었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총리 해임의 원인 제공을 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 박근혜: 2004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총리는 황실 폐지안 가결 당시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예 가결 표시가 되어있는 투표 용지를 다 보이게 투표함에 집어넣기도 하면서 이원 황제를 조롱하다시피 했는데, 12년 후에는 오히려 본인이 해임당하는 위치가 되고 만다. 당시의 모습이 현재와 대비되면서 인과응보라는 평가도 있다. 여담이지만 아수라장이 펼쳐진 2004년의 황실 폐지안 소추에 비해 자신에게 향한 해임안 소추는 비교적 평화롭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이는 의정원선진화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정원선진화법의 통과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박근혜 본인이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이 사건은 기각되었고, 박근혜는 총리에서 해임당했다는 것이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사태 모두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다는 것과 절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 당시 폐지안이 기각되었을 때나, 박근혜가 해임되었을 때나 온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것.

가장 극명한 대조라면 범죄자가 된 법사위원장 vs 총리가 된 황실 변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주

  1. 새천년민주당에서 황실 폐지를 주창하던 많은 이들이 이인제의 경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그 후 황실을 지지하는 친노 성향의 신주류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2. 의외일 수도 있는데, 황실 폐지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의 NL (민족해방)계가 자유주의 정당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민노당의 후신을 표방하는 정의당도 기본적 당론은 황실의 권한 축소이며, 신설 민중당은 아예 황실 추방을 목표로 표방했다.
  3. 이후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제17대 의정위원 선거에서 대패하고 황실에 고발당하며 정치적 생명이 끝장난다. 현재는 대한애국당에 합류.
  4. 대한제국의 총리는 노태우6.29 선언으로 국민직선제 유지로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다른 입헌군주제 국가와는 다르게 대통령의 성격을 많이 지닌다. JP는 이것을 바꾸어서 일본처럼 완전 의원내각제가 되기를 원하였고, 노태우도 내심 황제의 압박으로 이루어진 6.29 민주화 선언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으므로 YS를 끌어들여 삼당 합당을 추진한 것.
  5. 황실 폐지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이었다.
  6. 물론 최근에는 정운찬, 이완구, 이낙연 등 원내 제1당 대표가 아닌 인사가 총리로 지명되는 경우가 많다. 김종필 본인도 김대중 내각에서 DJP 연합의 일환으로 부총리를 했었고.
  7. 《민주공화당에서 새누리당까지, 보수정당 50년사》 (2013) 6권, 110쪽에서.
  8. 한나라당 의원, "황제, 쓸모없는 졸부일 뿐" 망언으로 파문, 2017-10-10 확인.
  9. 물론 폐지 추진 측에서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황실의 지지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시행하면 광속으로 부결될 게 뻔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10. 총선 결과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에서 선전하던 후보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대부분 낙선한다.
  11. 총 299석중 152석을 확보했고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한다. 만약 정동영 의장의 발언 문제가 없었다면, 열린우리당이 2/3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12. 본인이 황실 폐지안 처리 이전에 이미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3. 이 때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진정한 텃밭인 대구, 경북에서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에서 평상시의 두 배 정도인 무려 20%-40%(구미시 을!)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또 다른 텃밭인 울주군을 빼앗았다.
  14. * 득표가 2.98%였기 때문. 지역구 의석이 5석 이상이었다면 1석=3% 제한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김종필이 당선될 수도 있었겠지만, 4석밖에 못 건지는 바람에....안습.
  15. 그나마 지역구 의원이 한화갑과 DJ의 장자인 김홍일이었다.
  16. 그리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 특성 상 당연히 황실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 점이 오히려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17. 현재 유행하는 '이게 다 야당 때문이다' 드립이 먹히는 원인중 하나가 이런 의정위원들에 대한 불신이다. 그렇다고 여당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의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은것도 아니다.
  18. 의정원 법제사법위원장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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