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

경제일 (慶濟一, 1945년 4월 20일 ~ )은 아키시오의 정치인으로, 현직 국회의원 (선거구는 로고 현 히이로 군)이다. 소속은 민주당. 심평국 유일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대통령비서실이 설치된 1986년부터 강선한이 자살한 1993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다.

생애

일본 제국 치하에 있던 한국의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출신이다. 자신은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술회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였으며, 아버지는 체격 왜소 사유로 부산의 군수공장에 배치되어 군 복무를 대신하였다. 이로 인해 현역으로 징집된 주민들과 알력을 겪었고, 1953년 후지시로 도를 거쳐 신페이 제도의 철도 노동 현장에 취업한 아버지를 따라 아키시오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으나 경제일 본인은 182cm에 이르는 호방한 장신으로 성장했다. 당대 이주노동자들은 교육열이 대단하였고 경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부에 영 관심이 없던 형 경제원 대신 후지시로 정치대학 (현 후지시로 제3 대학)으로 진학한다. 후지시로 정치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수료하고, 미국 빌 허밍선 대학교 (University of Bill Hemingthon) 정치대학원에서 동북아시아 관계에 관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렇게 정치와는 무관해보였으나, 야타마 현립 대학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문조차 쓴 적이 없는 일본계 교수가 자신을 제치고 우선 임용되는 풍경[1], 전차에 일본인 전용석이 세워져있는 등의 적나라한 차별상을 목격하고 인종 차별 문제에 눈을 뜬다.

198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경제일은 심평한인협회에 가입하였다. 여기서 그는 당시 <요괴에게 빼앗긴 나라> (1977년)라는 책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강선한을 소개받았다. 심평한인협회를 비롯한 아키시오의 한인 사회는, 당시 온건파였던 영남계 (부경권, 대경권 출신. 대표적으로 조필제)와 관동계 (강원도, 함경도 출신, 대표적으로 강선한)가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경제일은 강선한과 이야기를 나눈 뒤 (오늘날로 표현하면 "사이다를 마신 것과 같이") 큰 만족감을 느끼고 강선한의 심평배달당에 합류하였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고학력자였고, 사물을 조리있게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아온 경제일은[2] 강선한이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건네주면 그것을 교열하는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강선한이 쓴 "독립 추진"을 "자치권 획득"으로 수정하자는 의견을 냈다가 다투기도 하였으나, 심평배달당이 총선에서 약진한 이후에는 강선한의 인지도를 높인 숨은 공신으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강선한과의 관계도 다시 호전되었다.

1986년, 새로 건국된 심평배달공화국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어, 강선한 대통령의 각종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강선한과 동향으로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관동계는 이에 대해 불만을 품었으나, 영남 출신이면서도 관동계와 뜻을 같이하는 등 그나마 중도적인 인물이 경제일이었으므로 뜻을 곡해해 전달할 우려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반대를 철회한다. 신페이 내전 발발 후, 여러 장관과 국무총리가 영남계와 관동계의 권력 암투로 수시로 교체되는 와중에도, 강선한의 비호 하에 대통령비서실장직은 단 한번도 교체되지 않았다.

경제일은 강선한의 자살 순간에도 함께하였으며, 강선한이 자살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다른 비서진과 함께 벙커를 돌며 생존자들을 규합, 정부군에 투항하였다. 1994년 나다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강선한 대통령을 변호하는 한편 "대통령의 뜻은 확실히 전했으나, 내각과 군부에서 영남계, 관동계로 나뉘어 뜻을 곡해해 일방적 전쟁을 벌이고 전쟁 범죄를 벌였다"는 식으로 책임 전가를 시도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7년 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하다, 1998년 모범수로 조기출소하였다.

2006년, 관동계 한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2008년 히이로 선거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현재 3선 의원이다. 히이로 군은 관동계가 많이 거주하고 있고 심평국에 대한 향수도 크기 때문인듯.[3]

각주

  1. 《慶濟一氏 현립대 교수직 또 고배... "조선인이라 차별하는 것인가"》, 1979년 1월 19일, 미령한인신문
  2. 《姜 대통령, "경제일 비서실장 內定者, 타고난 달변가..."》, 1985년 12월 10일, 미령한인신문
  3. 사실 구 심평국 남부에서는 대체적으로 심평국에 대한 향수가 크다. 그래서 비단 이 사람만이 아니라 정당별로 로고 현에 공천할 때는 현지 출신 한국계 후보들을 많이 공천해주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