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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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5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경복궁 전경.
북궐도, 혜촌 김학수, 1975년

景福宮 / Gyeongbokgung(Palace)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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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한 것을 경계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두어서 황극의 복을 누리시면, (戒安佚而存敬畏 以享皇極之福)
성자신손(聖子神孫)이 계승되어 천만대를 전하리이다. (聖子神孫 繼繼承承 傳于千萬世矣)

 
— 정도전,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10월 7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의 법궁

한성특별시에 있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궁궐 중 하나이며, 현재 대한제국의 법궁이다.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성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소재. 태상황 이원이 경복궁 내의 이궁인 건청궁에 거주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궐이다. 이름을 지은 이는 정도전인데 <시경> 주아편의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끝의 景福을 딴 것으로 큰 복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잔치 끝에 천자에게 바치는 노래였는데 정도전은 연회 중 대취한 태조 이성계가 "경은 이번에 새로 지은 궁궐의 이름을 지어서 우리 왕조가 만대까지 빛나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자마자 즉석에서 일어나 궁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복궁의 주요 전각들의 이름을 붙인 것도 모두 정도전이다.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도 모두 정도전이 붙인 이름. 정도전을 위시한 신진사대부가 지은 궁궐이기 때문에 유교 이념을 반영하여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비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다.

임진왜란 전 조선 전기 동안 조선 왕조의 법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복궁은 법궁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엄정한 기하학적 공간분할, 반듯한 축선상의 건물배치, 정연한 대칭구조로 설계되었다. 이궁인 창덕궁(+창경궁)과 양궐 체제를 갖췄는데, 임금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두 궁궐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그 자리만 출입 금지로 묶인 채 200여 년 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 흥선대원군이 재건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참고로 흥선대원군이 지은 경복궁과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경복궁의 모습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세종대왕이 왕자 시절 2층에서 자다가 병이 났다는 등 다층 건물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띈다. 또 근정전에 청기와를 얹었다는 언급 등 차이점이 보인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 왕실에서 제작했다는 대출행은 그 당시 경복궁의 모습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무엇보다, 아래 각주에서도 언급되지만, 최대 규모 5,000칸까지 서서히 확장되었던 이전 건물과 달리 흥선대원군은 단숨에 7,400칸짜리로 중건했다. 단숨에 1.5배 크기가 된 것.

많지야 않겠지만 '경북궁'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묘하게도 경복궁의 별칭은 북궐(北闕)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한성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3호선 경복궁역이며,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광화문 안쪽이다. 그리고 3호선 안국역이나 5호선 광화문역에서도 걸어갈 수 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경복궁 앞길에는 각종 관청이 있어 육조 거리라 불렸으며, 이 길이 오늘날의 세종대로다. 당대에도 국가의 중심 거리였기 때문에 육조 거리는 지금의 세종대로의 폭과 거의 같은 폭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세종대로 중앙에는 광화문광장이 설치되어 있다. 주변에는 청와대, 헌법재판원, 정부한성청사, 주한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이 있으며 그 유명한 인사동 거리도 경복궁에서 꽤 가깝다.